이재명 대통령은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A4용지 12장 분량 연설의 상당 부분을 인공지능(AI) 투자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할애했다. 격변하는 국제 무역질서 재편 속에서 국가 생존 전략으로 AI 투자를 제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AI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국가의 생존을 모색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라며 “국민과 함께 AI 시대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했다. ◇ “군 현대화·자주국방도 AI로”이 대통령은 이날 “내년은 AI 시대를 열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역사적 출발점”이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의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의 고속도로를 냈다”며 “이제는 AI 시대 고속도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까지 거론한 것은 AI 투자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AI 고속도로 구축이 특정 정권의 목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등 AI를 적용한 산업 기술·시스템인 피지컬 AI 육성에 5년간 6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 피지컬 AI 지역거점을 광역별로 조성하고 대규모 연구개발(R&D)·실증 추진을 통해 AI 기반 지역 혁신을 촉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바이오헬스, 주택, 물류 등 생활밀접형 제품 300개의 신속한 AI 적용을 지원하고 복지·고용, 납세, 신약 심사 등을 중심으로 공공 부문 AI 도입을 확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AI 시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000개를 추가 구매해 정부 목표인 3만5000개를 조기 확보하겠다”며 “엔비디아가 GPU 26만 개를 한국에 공급하기로 한 만큼 국내 민간기업이 GPU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AI 대전환으로 군을 현대화해 자주국방에 가까이 가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 대통령은 “재래식 무기를 AI 시대에 걸맞은 최첨단 무기체계로 재편하고 스마트 강군으로 신속히 전환할 것”이라며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우리 염원인 자주국방을 확실히 실현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계층·지역 간 양극화와 불평등 완화 의지도 밝혔다. “시대 변화의 충격을 가장 빨리, 가장 크게 받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라며 생계급여 지원, 장애인 일자리 확충 등을 약속했다. ◇ 국민의힘 “야당 탄압 규탄”이날 시정연설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불참한 채 진행됐다. 국민의힘은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고 이 대통령의 국회 도착에 맞춰 본관 로텐더홀 계단에서 특별검사의 추경호 전 원내대표 구속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규탄대회를 열었다. 국민의힘은 시정연설 동안 비공개 의원총회를 한 뒤 “이재명 정권의 치졸한 야당 탄압 정치보복과 특검의 야당 말살 내란 몰이 목적의 무리한 정치 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야당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22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불참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을 시작할 때 국민의힘 쪽 빈 의석을 응시하며 “좀 허전하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에 통과돼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며 재차 빈 국민의힘 의석 쪽을 바라봤다.
강현우/최해련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