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어렵다는 말을 개막하는 날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이 끝나고 나니 관객분들이 '제목을 절대 안 잊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마음이 확 놓였어요." (뮤지컬 '프라테르니테'의 이다민 작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창작 초연 뮤지컬 '프라테르니테'가 지난달 말 대학로에서 막을 올렸다. 프라테르니테(Fraternite)는 프랑스어로 '연대'를 뜻하는 단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난 이 작가(30)와 임예진 작곡가(28)가 처음으로 협업한 이번 작품의 핵심 메시지다.
10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난 두 창작진은 초연 당일 확인한 기대 이상의 관객 반응을 떠올리며 "언젠가 작품이 프랑스에서 공연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프라테르니테'는 프랑스 지식인층을 대변하는 '빅토르 장 콜테'와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굴뚝 청소부 소년 '제르베'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일으킨 혁명 속에서 연대하고 갈등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거대한 혁명사 대신 혁명 가운데 흔들리는 두 인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모두가 평등한 공화정을 꿈꾸던 빅토르는 입헌군주제를 바라는 부르주아 동료들 사이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인물이에요. 결국 빅토르는 제르베가 추구하는 진정한 공화정의 시대가 올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죠.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용기를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이다민 작가)
2021년 한예종 전문사(석사)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작품의 소재 개발부터 머리를 맞댔다.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혁명을 주제로 재학 시절 제작한 45분짜리 단편 무대를 발전시켜 지금의 '프라테르니테'로 키웠다. 2023년 CJ문화재단의 뮤지컬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 '스테이지업'에서 2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정됐다. 이후 내부 리딩, 쇼케이스 등 2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정식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작품에는 두 인물의 미묘한 관계를 반영해 가사를 주고 받는 노래가 많다. 임 작곡가는 "가사를 주고받는 곡을 쓸 때는 제가 직접 캐릭터를 연기를 해보는 편"이라며 "대사의 리듬과 최대한 비슷한 범위에서 멜로디를 붙여야 하기 때문에 감정을 이입해 연기해보면 작곡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혁명의 엄중함을 담았을 거란 예상과 달리 서정적이고 명랑한 분위기의 노래도 들려준다. 임 작곡가는 "프랑스 혁명이 배경인 만큼 음악도 거창하고 무겁게만 흐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혁명의 소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의 떨림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대한 드라마를 담고 있으면서도 섬세한 인간적 결을 표현하는 프랑스 영화음악 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관객들이 주목해 들어야 할 넘버로는 '행복해질 자격'을 꼽았다. "노래에 '맞서 싸우자, 함께 일어나 외쳐'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단순히 작품 속 인물들의 외침으로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주어진 행복할 권리를 위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할 선언으로 다가갔으면 합니다." (임예진 작곡가)
이 작가는 재관람을 해야 작품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 봐야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라 처음 볼 때는 흐름을 따라가고, 두 번째에는 왜 두 인물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첫 장면에서부터 선명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연출은 이날부터 서울시극단장 임기를 시작한 이준우가 참여했다. 작품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녹여낸 단정한 무대 연출이 인상적이다. 빅토르 장 콜테 역은 배우 박유덕, 안재영, 양지원이 맡았다. 제르베 역은 김기택, 윤재호, 이세헌이 함께한다. 공연은 내년 1월 18일까지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에서.
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