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ESS 폭풍성장' 테슬라, 배터리 부족하자 韓에 러브콜

입력 2025-11-03 17:47
수정 2025-11-10 15:51
올해 초 미국 인디애나주에 문을 연 삼성SDI와 현지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의 배터리 합작공장에는 ‘반쪽짜리 공장’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1년이 다 되도록 가동률이 50%를 밑돌아서다. 스텔란티스 전기차를 찾는 사람이 좀처럼 늘지 않는 데다 지난 9월 미국 정부가 대당 7500달러(약 1070만원)에 달한 전기차 판매 보조금을 중단해 그나마 있던 수요마저 뚝 끊겨서다.

‘실패작’으로 평가받던 인디애나 공장을 살린 건 테슬라와 에너지저장장치(ESS) 그리고 중국이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ESS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테슬라가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둔 삼성SDI를 찾았다. 미국 정부의 ‘배터리 탈(脫)중국’ 방침 덕분에 삼성SDI에 기회가 온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미국 공장 가동률을 높일 기회를 잡고, 테슬라는 부족한 배터리를 조달한다는 측면에서 서로에게 윈윈”이라며 “생산 라인 변경 작업을 거쳐 이르면 내년 말 공급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 韓 배터리에 러브콜 보낸 테슬라테슬라와 납품 논의를 시작하자 삼성SDI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첫 번째 숙제는 파트너인 스텔란티스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테슬라에 납품하려면 인디애나 공장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공장은 삼성SDI가 미국에 둔 유일한 공장이다. 삼성SDI는 즉각 협상에 들어갔다. 삼성SDI는 계약에 따라 스텔란티스와 공장 운영비를 나눠 부담 하는데 가동률이 떨어지면 고정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생산 라인을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다. 스텔란티스는 받아들였고, 삼성SDI는 삼원계 배터리 라인을 ESS용으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테슬라와의 협상은 순탄하게 이뤄졌다. 서로가 서로를 그만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ESS 수요를 감당하려면 2~3년 내 생산 규모를 연 100기기와트시(GWh)로 늘려야 하지만 배터리 셀을 구할 곳이 없었다. 테슬라는 세계 1위 배터리 메이커인 중국 CATL에서 ESS용 배터리를 조달했는데, 미국 정부가 중국산 배터리에 60% 안팎의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도 막았다. 대안은 미국에 공장을 둔 비(非)중국계 기업인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뿐이었다. ◇ “테슬라 생태계 공식 편입”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일시적 수요 침체)에 신음해온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테슬라 생태계에 올라타면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삼성SDI가 계획대로 테슬라에 연간 10GWh에 달하는 ESS용 배터리를 납품하면 매년 최소 1조원 이상 매출을 거둔다. LG에너지솔루션도 30GWh로 공급 규모를 50% 늘리면 매년 3조원 이상 덩치를 불릴 수 있다.

향후 납품 물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테슬라가 확보한 배터리 셀은 테슬라 자체 생산량 10GWh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가 공급하기로 한 40GWh 등 총 50GWh가 전부다. 테슬라 목표인 연 100GWh의 절반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ESS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회사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한국 3사와 일본 파나소닉 정도인 만큼 테슬라가 추가로 한국 기업에 ‘러브콜’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파나소닉은 현재 테슬라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해 증설 없이는 ESS 물량을 늘리기 어렵다.

삼성SDI가 테슬라 생태계에 들어갔다는 건 향후 전기차와 휴머노이드 로봇, 우주선 등으로 협력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도 지닌다. 테슬라의 깐깐한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만큼 다른 ESS 사업자를 고객으로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에 납품한 경험은 미국 공공 프로젝트나 글로벌 ESS 입찰에서도 신뢰도 지표로 작용한다”며 “다른 사업에서 테슬라와 파트너십을 맺을 가능성도 커졌다”고 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긍정적으로 공급을 논의 중이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