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불러온 인공지능(AI)발 훈풍이 ‘주요국 중 올해 상승률 1위’를 달리는 국내 증시를 더 달구고 있다. 3일 코스피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4200선을 터치했다. 삼성전자는 11만원, SK하이닉스는 62만원 고지를 뚫었다. 증권사들은 앞다퉈 코스피지수 내년 예상치를 올려잡고 있다.
◇ 기관·개미 ‘순매수 랠리’이날 코스피지수는 2.78% 급등한 4221.87에 거래를 마쳤다. 개인투자자가 641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기관도 1950억원어치 사들였다. 외국인 투자자는 796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발표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개 공급,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국내 신규 AI 데이터센터 구축 발표 등을 계기로 AI 데이터센터가 대거 들어설 것으로 전망되자 관련 종목이 크게 올랐다. SK하이닉스는 10.91% 뛴 62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상 처음 ‘62만닉스’ 고지를 밟았다. 삼성전자도 3.35% 오른 11만100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10만원을 넘긴 지 3거래일 만에 11만원 선을 뚫었다.
매수세가 대형주에 집중되는 현상이 지속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거래대금은 이날 6조7690억원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거래대금(22조5420억원)의 30%가 두 종목에 쏠린 셈이다. 지수가 4200을 뚫었지만 상승 종목은 289개에 불과했다. 하락 종목은 615개에 달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형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똘똘한 한 주(株)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둔화하는 경기와 상관없이 AI 투자 사이클을 통해 이익 전망치가 높아지는 종목에만 막대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 기다리는 조정 올까주가지수가 파죽지세로 오르자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피지수 예상치를 이날 일제히 상향 제시했다. 유안타증권은 내년 지수 전망치 밴드를 종전 3300~4000에서 3800~4600으로 높였다. LS증권도 내년 예상치 상단을 4100에서 4500으로 올려 잡았다. 대신증권은 내년 4000대 후반까지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코스피지수 상단으로 각각 5000, 4600을 제시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보면 ‘코스피지수 5000’까지 약 18%(778포인트) 남았다. 김 센터장은 “시장 기대치 이상의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이 연내 발표된다면 유동성이 급격히 유입되며 지수 5000까지도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종이 지수 상승세를 계속 이끌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고태훈 에셋플러스자산운용 액티브ETF본부장은 “마이크론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12~13배인 것과 비교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아직 저렴하다”며 “SK하이닉스의 이익 전망치 증가를 감안할 때 지금보다 시가총액이 두 배 이상 뛸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코스피지수 5000을 내년까지 달성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직전 강세장이던 2003~2007년 당시엔 코스피지수가 2003년 32%, 2004년 10%, 2005년 50%, 2006년 4%, 2007년 40% 올랐다. 2년 연속 20% 이상 상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좋아질 기업 실적까지 미리 반영된 상황”이라며 “내년에는 상승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급하게 뛴 만큼 조만간 10~15% 수준의 기계적 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조정 국면에 국내 증시에 진입하기 위해 대거 대기 중이다. 투자자 예탁금은 85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12월 기준금리 동결, 엔비디아의 실적 증가율 하락 등이 조정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영일 센터장은 “조정이 왔을 땐 반도체 조선 등 기존 주도주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심성미/전범진/맹진규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