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탄생 주역 임종룡, 26년 묵은 계파 갈등 끝냈다

입력 2025-11-03 18:00
수정 2025-11-04 01:13

‘우리은행 탄생의 아버지.’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66)을 언급할 때 우리은행 직원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30년간 관료로 지내다가 환갑이 훌쩍 지나 우리금융에 합류한 그를 이렇게 부르는 배경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엔 우리은행이라는 이름의 은행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으로 불리는 두 은행이 있었다. 두 은행이 설립된 시기는 각각 1899년과 1932년. 당시 총자산 규모가 국내 기준 각각 6위와 5위인 대형 은행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파도 속에 두 은행은 모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제시한 ‘자기자본비율 8%’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1998년 부실 은행이란 딱지가 붙었다.

가만히 놔두면 쓰러졌을 두 은행은 정부 주도로 1999년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때 합병 작업을 실무적으로 진두지휘한 관료가 바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소속 ‘임종룡 서기관’이었다. 1999년 1월 역대 최연소 은행제도과장에 오른 임 회장의 지휘 아래 한빛은행은 2002년 사명을 우리은행으로 바꿀 때까지 총 5조1717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다.

두 부실 은행이 합병되고 26년이 지난 현재 우리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7.2%에 달하는 초우량 은행으로 거듭났다. 총자산은 올 3분기 말 490조원을 넘어섰다. 우리은행 직원들이 관료 출신인 임 회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임 회장이 2023년 우리금융 회장으로 부임하기까지 풀리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바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 인사가 융화되지 않는 계파 갈등이었다. 회사는 합쳐졌지만 같은 식구라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아 우리은행 행장은 그동안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 임원이 기계적으로 번갈아 가며 맡았다. 심지어 작년까지도 인사기록 카드엔 출신 은행이 어디인지 기록돼 있었고, 퇴직 임직원의 동우회도 따로 운영됐다.

임 회장은 올초 이 같은 계파 문화를 타파하는 일을 화두로 내세웠다. 우선 올해 4월부터 인사기록 카드에 출신 은행 구분을 완전히 삭제하도록 했다. 또 따로 운영되던 동우회를 통합하기 위해 직접 퇴직 임직원을 찾아 설득했다. 결국 두 동우회는 지난 1월 통합을 추진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협약이 체결되고 10개월이 지난 이달 3일, 두 동우회는 기금 이전 등의 절차를 모두 마치고 ‘통합 우리은행 동우회 출범 기념식’을 열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하고 26년10개월이 지나고서다.

우리은행이 26년 전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6월엔 우리금융의 모든 계열사가 윤리규범에 ‘사조직을 통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 조항을 명문화했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임 회장은 “오늘은 통합된 우리은행 동우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선배들이 통합을 이뤄내 참된 본보기를 보여줬듯이 후배들도 한마음으로 합심해 신뢰받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중근 통합 우리은행 동우회장은 “임 회장이 없었다면 동우회 통합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통합의 물꼬를 터준 임 회장의 깊은 통찰과 남다른 정성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