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수치료 등 비급여 과잉 진료를 바로잡기 위해 5세대 실손보험, 관리급여 도입 등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시행 시기가 해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출범 후 실손보험·비급여 개혁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시스템 왜곡과 보험금 누수 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비급여 진료 체계를 조속히 손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표류하는 실손·비급여 개혁3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내년 1분기께 5세대 실손보험(특약1)을 출시할 계획이다. 당초 금융당국은 급여와 중증 비급여를 보장하는 상품(특약1)을 올해 말 선보이고, 비중증 비급여(특약2) 보장 상품은 내년에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특약1 출시 일정이 올해 말에서 내년 1분기로 연기된 것이다.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기 위해선 금융당국이 보험업 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규정 변경 예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관리급여 도입도 해를 넘길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복지부는 올해 안에 관리급여 항목을 결정한 뒤 4분기에 시행할 계획이었다.
복지부는 관리급여 신설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의료계, 환자·소비자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비급여 관리 정책협의체’를 지난 5월 출범시켰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리급여를 도입하려면 시행령을 개정해 근거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달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올해 안에 관리급여 항목을 선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의사·환자 반발 넘어서야정부는 작년부터 올초까지 의료 개혁을 추진하며 실손보험·비급여 문제 개선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핵심은 5세대 실손보험과 관리급여 도입이다. 5세대 실손보험은 비중증·비급여 진료의 본인부담률을 50%로 높인 것이 특징이다. 실손보험을 악용한 ‘의료 쇼핑’을 막기 위해 본인 부담을 키운 것이다.
복지부는 오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본인부담률을 최대 95%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관리급여는 비급여 항목 중 일부를 국민건강보험 체계에 편입해 혜택을 주는 대신 진료비와 급여 기준 등을 설정하고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수치료가 관리급여 항목이 되면 10만원짜리 치료를 받았을 때 환자는 9만5000원, 건보가 5000원을 부담한다.
문제는 의사 단체가 관리급여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 및 비급여 개혁은 전통적으로 의료계와 소비자 저항이 큰 사안이다. 소비자는 실손보험이 불리한 구조로 바뀌고, 의료계는 수입원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실손보험을 악용한 ‘비급여 빼먹기’가 필수의료 붕괴, 건보 재정 악화로 이어지고 있어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비급여 현황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며 “비급여 항목이 수만 개에 달하는데 현재 정부가 진료비용 등을 보고받는 건 1000여 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잉·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주기적으로 재평가해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서형교/남정민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