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투자가 亞·太 번영 이끈다"…美 반대에 '다자무역' 표현 빠져

입력 2025-11-02 18:06
수정 2025-11-03 01:12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견고한(robust) 무역 및 투자가 아·태지역 성장·번영에 필수적’이라는 내용을 담은 ‘경주선언’을 채택하고, 지난 1일 마무리됐다. APEC 선언문에 늘 포함됐던 자유무역 질서를 지지한다는 문구는 빠졌지만, 합의문 채택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폐막 4시간 전 합의문 극적 채택이날 공개된 경주선언에는 ‘글로벌 무역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고, 회복력을 촉진하고 혜택을 제공하는 무역 및 투자 환경이 중요하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아울러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 의제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 시장 주도적인 방식으로 지역 경제 통합을 추진해 나갈 것’이란 내용도 있다. FTAAP는 아·태 지역의 기존 지역·양자 무역협정(RTA 및 FTA)을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지역 경제 통합을 추구한다는 구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논의됐다.

다만 지난해 페루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당시 채택된 ‘마추픽추선언’에 있던 ‘세계무역기구(WTO)가 핵심인 규범 기반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한다’는 문구는 빠졌다. 대신 이날 함께 타결된 외교통상 합동각료 회의(AMM) 공동선언에 포함됐다. AMM 공동선언에는 ‘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WTO 규범이 핵심임을 인식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정상급 합의에 포함하지 않는 대신 장관급 성명에 일부 수정해 넣은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유무역 질서 관련 문구를 거부한 결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은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고, WTO 관련 문구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경주선언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 트럼프 정부 1기 때인 2018년 파푸아뉴기니 APEC 정상회의 때는 합의문을 내놓지 못했다.

21개 회원은 폐막 전날인 지난달 31일부터 마지막 합의를 시도했고, 폐막 당일 오전 7시30분께까지 밤샘 토론을 거쳐 합의에 성공했다. 폐막을 약 4시간 앞둔 시점에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후 기자회견에서 “가장 큰 쟁점은 무역과 투자에 관한 챕터를 둘 거냐였다”며 “이번 합의문에 아·태 지역 회복과 성장을 위한 회원 간 협력 의지를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AI·인구구조 변화 문제도 협력경주선언에는 ‘문화·창조산업’을 아·태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담겼다. 회원국들은 “문화·창조산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인식하고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향후 우리 ‘K컬처’가 아·태 지역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정상들은 경주선언과 함께 ‘APEC AI 이니셔티브’와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를 별도로 채택했다. APEC AI 이니셔티브는 미국과 중국이 모두 참여한 최초의 정상급 AI 관련 합의문이다. AI 이니셔티브에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AI 생태계를 구축해 가난한 국가, 저소득층도 AI 혁신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협력 방향을 담았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이 대통령은 차기 APEC 의장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의장직을 인계했다.

경주=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