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인도 산업과 함께 자란다…‘제2의 배그’ 개발 준비 완료

입력 2025-11-02 15:31
수정 2025-11-02 20:30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디아(BGMI)’로 인도 모바일 게임 시장 선두 자리를 꿰찬 크래프톤이 현지 산업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는 ‘콘텐츠-인프라 융합형’ 모델을 본격 구축하고 있다. ‘제2의 배그’를 발굴해야 한다는 숙제가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가운데 단순 게임 서비스 제공을 넘어 결제·통신·온오프라인 연결이라는 세 가지 인프라 위에 새로운 성장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도 정부가 게임 산업을 창의경제의 핵심 축으로 공식 육성하는 동시에 '디지털 인디아' 강화 전략을 내놓으면서 시장 확장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분석된다. 게임이 산업을, 산업이 다시 게임을 키운다…현지 융합 모델 가속
지난달 30일 찾은 인도 구르가온. 수도 뉴델리 근교에 위치한 도시로 마이크로소프트(MS), 삼성 등 글로벌 대기업 지사가 몰려있는 인도 산업, 경제 중심지다. 이날도 내외국인 근무자들이 바삐 움직이며 도시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 곳에서 지난달 31일부터 배틀그라운드모바일 인터내셔널 컵(BMIC)이 열리고 있다. 대회 시작에 앞서 만난 크래프톤 협력사 관계자들은 “인도는 단순히 게임을 소비하는 곳을 넘어, 게임 산업이 성장하는 장(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도 내 게임 산업 인프라 확장의 핵심 축은 결제, 온·오프라인 연결, 통신 네트워크다. 크래프톤이 콘텐츠를 공급한다면 세 가지 축이 매출 전환과 이용자 저변 확대 등 디지털 인프라를 강화하는 구조다.

결제 부문에서 크래프톤은 현지 파트너사인 유니핀과 협력해 오프라인 충전과 온라인 결제를 연계하는 하이브리드 결제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있다. 유니핀은 인도네시아에 본사를 둔 글로벌 결제 플랫폼으로, 하루 평균 350만 건 이상 거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날 만난 악셰 세티 유니핀 남아시아 총괄은 “5년 전만 해도 인도는 (게임) 다운로드 수는 높지만 매출은 낮은 시장으로 평가받았다"며 "결제 인프라 확장 이후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정부는 2016년 통합결제시스템(UPI)을 도입한 이후 금융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14억 인구 전역에 ATM과 은행을 설치하기 어려운 탓에 모바일 기반 무선 결제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실제 UPI의 폭발적 이용으로 결제 허들이 낮아지면서 전자상거래 규모도 2029년까지 연평균 11.45%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올해 들어 UPI는 하루 평균 7억 건대 거래를 기록하며 생활 인프라로 안착했다. 세티 총괄은 “유니핀은 인도 전역에 약 100만 개의 오프라인 판매처도 두며 접근성을 강화하고 있다”며 “인도 게이머 1인당 월평균 매출이 3달러 수준인데, 향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 부문에서 크래프톤은 인도 최대 통신사 릴라이언스 지오(Jio) 와의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양사는 인도 최초로, ‘BGMI 전용 요금제(지오 게이밍 팩)’를 운영 중이다. 아베이 샤르마 지오게임즈 e스포츠사업총괄은 “5G 보급률이 70%를 넘었고 데이터 이용량도 15% 이상 증가하면서 BGMI 요금제 가입자도 급증하고 있다”며 “콘텐츠와 통신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이밍 팩은 시작에 불과하며 조만간 크래프톤과 추가 협업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현지 기업 협력에 기반해 BGMI는 2021년 인도 출시 이후 지난 9월 이용자 2억 4000만명을 돌파했다. 인도 모바일 시장 내 인기 순위 3위권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크래프톤의 최대 해외 성공작으로 자리 잡았다.

크래프톤은 인도의 국민 스포츠인 크리켓을 통해 모바일 시장 선두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크래프톤 인도법인은 지난 3월, 크리켓 게임 ‘리얼 크리켓’을 개발한 노틸러스 모바일을 인수했다. 해당 시리즈는 누적 다운로드 2억5000만 건을 기록하며 인도에서 가장 성공한 크리켓 게임으로 꼽힌다. 크래프톤은 인도 프로 크리켓 리그(IPL) 등과의 협업을 추진하며 오프라인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IPL 최다 우승 구단인 첸나이 슈퍼킹스의 로히트 카틸 커머셜 총괄은 이날 “게임은 젊은 팬을 스포츠로 유입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스포츠 업계에서도 게임과 스포츠의 결합은 Z세대(1997년 ~ 2012년 출생) 팬층을 확보하기 위한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미국 조사기관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Z세대의 절반 이상이 “한 번도 프로 스포츠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를 겨냥해 스포츠 리그들은 게임 플랫폼을 통해 팬층 확장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층이 즐기는 ‘로블록스’ 내에 ‘윔블월드’를 열었다. 미니 테니스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스타 선수와 가상으로 교류할 수도 있다. 가상 공간에서 스포츠를 경험케 한 후, 실제 경기 시청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시도다. ‘두뇌 수출국’에서 ‘디지털 내수강국’으로 뻗는 인도
인도 정부가 게임 산업을 국가 혁신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지정하고, 해외 기업에 대한 개방을 가속화하면서 국내 기업에 기회가 열리고 있다. 과거 ‘정보기술(IT) 인재 수출국’이자 ‘저비용 생산기지’로 인식되던 인도가 구매력과 기술력을 겸비한 ‘IT 자생 시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을 발표하면서다.

지난 8월 인도 의회를 통과한 온라인게임 진흥 및 규제법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e스포츠, 소셜게임, 창작형 게임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 내용을 담았다. 게임·콘텐츠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이다. 인도 정부는 e스포츠를 공식 스포츠로 인정하고, 투자 유치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담 위원회 및 가이드라인을 신설하는 동시에 온라인게임청을 설립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법안 통과 이후 “인도를 게임·혁신·창의성의 허브로 만들겠다”며 “규제의 초점을 성장과 투자 유인에 두겠다”고 밝혔다.

인도 게임 산업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네덜란드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게이머는 34억2000만 명에 달하며, 이 중 인도는 약 6억 명으로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인도 게이머의 주간 평균 플레이 시간도 2023년 10시간에서 지난해 13시간으로 늘었다.

디지털 분야의 투자 환경 역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인도 상공부 산하 투자진흥기관 인베스트 인디아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입액은 2000년 18억 달러에서 2023년 85억 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디지털 콘텐츠와 플랫폼 사업이 포함된 서비스 부문이 자동차 산업에 이어 인도 내 두 번째로 큰 투자 분야로 나타났다. 시다르트 나라야난 인베스트 인디아 수석 부사장은 “인도는 전자시스템설계·제조(ESDM)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은 미국·일본과 함께 7대 주요국 중 하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인도 진출 성공 사례도 늘고 있다. 핀테크 기업 어피닛(구 밸런스히어로)은 저신용자 대상 소액대출 앱을 통해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매출이 900% 이상 증가하며 인도 디지털 금융시장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인도의 소비 시장 규모는 2033년까지 2조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인도가 ‘스타트업 강국’이라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지난 5월 기준 인도에는 약 14만 개의 스타트업과 119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로 커머스·핀테크·에듀테크 등 디지털 분야 기업들로 인도 디지털 산업 허리 또한 견고하다는 분석이다.

이성호 주인도 한국대사는 "인도는 마지막 남은 시장 진출지"라며 "양자 협력을 확대해 디지털, IT 부문에서 강점을 가진 양자 협력을 확대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구르가온=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