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메모리 시장 ‘큰 손’ 엔비디아에 대해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 공급이 유력해졌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뒤쳐졌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최근 HBM3E에 이어 HBM4까지 연거푸 납품에 성공하면 시장 판도를 바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엔비디아는 31일 경북 경주에서 ‘2025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CEO 서밋에서 양사간 협력 내용을 발표하며 삼성전자의 엔비디아에 대한 HBM4 납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서울 삼성동에서 ‘치맥 회동’을 한 뒤 이날 경주에서도 만났다.
삼성전자의 HBM4 공급 가시화는 SK하이닉스를 따라잡는 것을 넘어 메모리 반도체 왕좌를 되찾기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 전략의 핵심에는 SK하이닉스보다 한 세대 앞선 D램 공정을 도입한 기술적 우위가 있다. 삼성전자는 HBM4 D램 다이 생산에 6세대인 1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급 1c 공정을 적용했다. 공정 우위를 바탕으로 삼성의 HBM4는 핀(pin)당 11Gbps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구현했다. 데이터 입출력 통로도 기존보다 두 배 늘린 2048개로 총 대역폭을 끌어올렸다.
HBM4의 베이스 다이를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고, 자사의 최첨단 4nm 파운드리 공정을 통해 직접 생산한 것도 삼성전자의 신의 한 수다.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에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이러한 수직 통합 방식은 D램 다이와 로직 베이스 다이의 설계를 처음부터 함께 최적화할 수 있고, 외부 파운드리에 의존하지 않아 생산 일정과 비용을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밖에 엔비디아에 GDDR7, SOCAMM2 등 차세대 메모리도 공급한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4 공급사로 합류하면 HBM 시장 지각 변동도 예상된다. 업계선 내년을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약 30% 수준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엔비디아 공급망 내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소폭 줄어들고,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구도로 재편될 것이란 얘기다.
다만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와의 내년 HBM 공급 계약을 마무리했다고 밝히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마이크론 역시 엔비디아 HBM3E 인증을 획득하며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로 부상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