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코먼 "韓부채, 규모보다 '궤적' 중요…점차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입력 2025-10-30 17:41
수정 2025-10-31 01:47

“국가부채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궤적(trajectory)’입니다. 한국은 국가부채 추세를 중장기적으로 낮춰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이끄는 마티아스 코먼 사무총장은 한국 재정 상황에 관해 이같이 진단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경주를 찾은 코먼 총장은 지난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고령화 등 구조적인 재정 압력이 높은 나라”라며 국가부채를 점차 낮춰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 재무장관 출신이다. 한국의 확장재정 정책을 묻는 질문에는 통역이 이뤄지기 전부터 ‘확장재정’이라는 표현을 알고 있다고 답하며 “단기적으로는 소비를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가 뚜렷하다. 그만큼 부채에 대한 우려도 크다.

“우선 한국의 재정 상황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본다.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채무(D2) 비율은 약 53%로, OECD 평균인 112%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는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해 확장재정이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는 틀 안에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

▷한국의 부채 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세계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적정 부채비율’은 없다. 중요한 건 부채의 궤적이다. 각 국가의 경제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부채 문제도 각자의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은 구조적인 재정 압력이 큰 나라다. 고령화뿐만 아니라 국방비, 부채 이자, 코로나19처럼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외부 충격까지 다양한 부담을 지고 있다. 한국에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긴 어렵지만, 추세를 잘 관리하면서 점차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곳곳에서 무역장벽이 심화하고 있다. 이번 APEC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글로벌화와 무역 확대는 수억 명을 가난에서 구제했다. 소득과 생활 수준을 높였고, 혁신과 발전을 촉진했다. 소비재 가격을 낮춰 전 세계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도 했다. 개방된 시장과 규칙 기반 무역이 주는 경제적 이익을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양자든 다자든 대화해야 한다.”

▷이번 APEC에서의 논의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무역 확대는 한국 같은 수출 중심국에 특히 중요하다. 한국은 연간 수출액의 약 20%가 미국, 20%는 중국, 5%는 일본에서 오는 나라다. 한·미, 미·중, 미·일 간 협정이 이뤄질수록 한국엔 무척 긍정적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 APEC에서 진행될 여러 논의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뿐 아니라 이 지역의 다른 무역국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OECD는 앞으로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올해 상반기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견조하게 3.2% 성장했다.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투자에 나섰고,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증가했다. 그러나 내년에는 성장률이 2.9%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책 불확실성과 새로운 무역장벽이 주요 하방 위험 요인이다. 각국은 무역 긴장을 완화하고 개방적이면서 규칙을 기반으로 한 무역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 AI 투자를 확대했다고 언급했는데, 실제 AI가 세계 경제계의 화두가 됐다.

“AI는 엄청난 기회이자 당면한 현실이다. 도전과 위험도 있겠지만 피할 수 없다. 기회를 잡고 위험을 관리할 준비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의미다.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AI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AI는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교육·보건의 질을 높일 전략적 기회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최고 수준이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더 많은 근로자가 공식 노동시장(formal labor market)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용의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사회 보장 부담을 고용주 대신 세제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분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저소득층의 사회 보장 기여 부담은 비례적으로 더 완화해야 한다.”

경주=이광식/박의명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