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몸짓, 영롱한 땀방울…보석처럼 눈부시다

입력 2025-10-30 16:45
수정 2025-10-31 02:38

보석을 다듬는 것과 춤을 추는 것. 두 가지 행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에게 극도로 숙련된 ‘움직임’을 요구한다는 것. 보석 세공이든 무용이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훈련은 교과서가 아니라 움직임으로 전달된다. 지난 16일 시작해 11월 8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아펠’의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반짝이는 보석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미워하다 부서지게 껴안는 '룸 위드 어 뷰'1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강렬한 비트가 무대를 집어삼키며 댄스 리플렉션의 시작을 알렸다. 뜨겁게 일렁이는 저항의 몸짓, 객석까지 밀려드는 무용수들의 아드레날린…. 일상의 잡념은 순식간에 극장 밖으로 흩어졌다. 프랑스 마르세유 국립발레단과 음악 아티스트 론(Rone)의 협력 공연인 ‘룸 위드 어뷰’ 얘기다. 2020년 파리 샤틀레 극장 초연 이후 댄스 리플렉션을 통해 국내 관객을 처음 만났다. 희뿌연 사각 돌덩이들로 폐허가 된 장소를 형상화한 무대 위, 무용수들의 땀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공연 시작 10여 분 전부터 론이 쏟아내는 전자음악으로 극장의 맥박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객석을 등진 그가 디제이 믹서를 잡은 곳은 테두리만 남은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 안. 2층 높이에서 아찔한 춤의 서막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론과 함께 등장한 흰색 탱크톱 차림의 무용수.

안무는 단순했다. 두 다리는 론의 음악에 맞춰 규칙적인 스텝을 밟았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한 손은 리듬을 타거나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15분쯤 지나자 다른 무용수들이 차례로 등장해 군무를 이어갔다. 성별과 나이, 국적도 제각각인 무용수 23명이 뿜어내는 열기가 무대를 달궜다. 무아지경에 빠진 이들은 어제도 내일도 잊은 베를린의 클럽 어딘가를 떠올리게 했다. 무용수들은 박진감을 더해가는 음악에 맞춰 몰입과 광기의 경계를 오갔다.

자유로운 몸짓은 곧이어 폭력의 언어로 뒤바뀌었다. 서로를 부둥켜안던 남녀 무용수는 상대를 뿌리치고 밀쳐냈다. 하나가 둘이 되는 순간, 격정과 혐오가 뒤섞인 파드되(2인무)가 시작된 것. 지상 무대로 내려온 무용수들은 서로를 넘어뜨렸고, 심지어 목을 조르기도 했다. 분노와 절규가 뒤섞인 표정, 격렬한 몸짓까지 무대 위 모든 게 ‘카오스’였다.

무대 연출은 스케일이 컸다. 공연 초반 객석 위 조명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관객을 혼돈의 세계로 이끌었다. 천장에서 모래는 물론이고 실제처럼 보이는 물고기도 떨어졌다. 극장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도 수차례 울려 퍼졌다. 후반부는 대전환이었다. 증오로 들끓던 무용수들은 웃음을 띤 채 서로를 끌어안았다. 론 역시 검은 재킷을 벗어 던지고 들뜬 표정으로 무대를 즐겼다. 무용수들은 동료 위로 몸을 내던지는 이른바 ‘크라우드 서핑’을 통해 애정과 신뢰로 엮은 몸의 언어를 펼쳐냈고, 손을 맞잡은 채 큰 원을 만들어 빙빙 돌았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 서로를 겨냥하던 적대적 에너지가 외부의 적을 향해 화살을 돌린 순간, 무용수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발을 구르며 저항과 연대의 힘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무용수 전원이 오랑우탄처럼 가슴을 내리치는 장면에선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최근 프랑스 반정부 시위를 현대무용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빨갛게 달아오른 한 무용수의 맨살에 코끝까지 감동이 스며들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