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고 밝히며 우리 군의 숙원 사업인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가 가시화됐다. 소형 원자로와 잠수함 선체 기술 등만 개발하면 '게임 체인저' 급 전략 자산을 확보할 전망이 어느 때보다 밝아졌다. 핵 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정식 핵 무기 보유국과 사실상 핵 보유국 인도 등 6개국만 보유한 전략 무기로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상징한다. 연안 방어에 급급했던 한국 해군이 장래 핵 잠수함을 획득하면 한국형차기구축함(KDDX) 등과 함대를 구성해 해상 수송로 방어, 원거리 전력 투사 등 한 차원 높은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출 전망이다. 트럼프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미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이에 기반해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숙원사업인 핵 잠수함 건조의 가장 결정적인 장애물이 사라진 셈이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핵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없었으나 전날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명시적으로 요청한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락했다.
원자로 연료 확보 문제는 빠르게 미국과 합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와 중국 등이 저농축 우라늄을 잠수함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사례를 참고하면 농축도 20% 정도의 우라늄만 확보하면 된다. 현재 낮은 수준의 우라늄 농축도 미국이 동의해야 하지만 이 같은 제한은 풀릴 전망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정상회의 결과를 설명하며 "원자력협정은 기존 협의를 통해 일정한 방향성에 대한 양해가 이뤄져 있다"고 자신했다. 정부가 수 개월 간 미국과 협상을 벌이는 동안 위 실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에 관해 수 차례 '일본과 동등한 수준'을 언급했다.
주변국의 반대를 극복하기도 어느 때보다 여건이 좋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핵 잠수함을 건조한다고 선언했으며,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진 중국과 러시아도 강한 조치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내 실무진들의 보이지 않는 발목잡기를 넘기도 수월할 전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시절 핵 잠수함 건조를 추진했을 당시엔 미국 내 핵 비확산을 지지하는 매파 그룹의 반대가 심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양국 정상이 공개 석상에서 협정 개정에 동의한 셈이라 실무절차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해군참모총장 "10년 안에 5000t급 핵잠 만든다"군은 빠르게 핵 잠수함 도입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이 핵 잠수함 제공하기로 했지만 실제 도입은 차일 피일 미뤄지는 호주와 달리 한국은 잠수함을 자체 건조할 수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적 난제 극복은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핵 추진 방식이 검토되는 '장보고-Ⅲ 배치-Ⅲ'의 건조 시기에 대한 질문에 "착수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10여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결정하더라도 (건조 완료 시기는) 2030년대 중반 이후가 될 것이며 크기는 "5000t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 규모와 관련한 질문에 "해군과 협의해야 하지만 4척 이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이 독자 설계·건조한 3세대 잠수함(장보고-Ⅲ) 3번째 시리즈인 '장영실급'(3600t)급의 후속 잠수함의 핵추진 방식 건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에서 한국 핵 잠수함 건조 허용사실을 밝히며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밝혀 향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리조선소에는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시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숙련 노동자와 기술자 수급 등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안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선 한·미 간 추가적인 논의를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사 전문가인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승인은 한국이 기술동맹으로 도약할 결정적 계기”라며 “정부는 향후 한미조선협의체(SCG)와 핵추진잠수함 국책사업단을 구성해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농축·재처리 협력 등 관련 사안을 투명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아 미 해군 로스엔젤레스급(6900t급)이나 버지니아급(7800t급)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AP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전하며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미국은 해당 기술을 극비로 유지해왔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 호주와의 핵 잠수함 협정에도 미국의 직접 기술 이전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국방력 '차원이 달라진다'핵추진 잠수함이 실전 배치될 경우 한국 해군의 작전 반경과 전쟁 억지 능력이 대폭 향상될 전망이다. 원자력 잠수함은 원자재 수입과 제품 수출의 생명줄인 해상 교통로 방어를 위해 남중국해와 태평양으로 진출 할 수 있을 전망이다. 향후 도입되는 KDDX를 축으로 하는 기동함대와 본격적인 원양 작전에 나설 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해군 재래식 잠수함은 한반도 근해 방어 작전에 주로 투입되고 있다. 디젤 잠수함은 축전지 충전을 위해 자주 부상해야 하며, 연료 재보급 문제로 최대 20~30일 정도만 바다에 머물 수 있어서다. 반면 원자력 잠수함은 승조원의 체력과 식량 등 보급품만 있으면 무제한 작전이 가능하다. 미국 핵 잠수함은 출항 후 최장 6개월까지 재보급 없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은 "핵 잠수함은 보급없이 먼 바다까지 진출할 수 있고, 필요시 공해상에서 선박을 활용한 재보급 등을 통해 잠수함 작전 유연성의 차원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원자력 잠수함의 뛰어난 성능과 큰 체급으로 해군의 전쟁 억지력도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작전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탐지·추적을 회피하기 쉽고 공격 후 빠르게 이탈해 생존성도 높다. 디젤 잠수함은 최고 속력이 보통 20~22노트(37~41㎞/h)에 그치는 반면 원자력 잠수함은 25~35노트(46~65㎞/h)의 속력으로 운항할 수 있다. 적의 공격에 대한 보복 능력은 한층 높아진다. 현재 한국 최신예 장영실함이 10기의 수직발사관을 탑재한 데 비해 5000t급 이상 핵 잠수함에는 더 많은 무기를 적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보복 능력과 관련해선 한국이 핵 물질과 기술을 이용해 핵 탄두를 만들 것이란 의혹에 따른 국제원자력기구(IAEA)등 국제사회의 견제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현일/김동현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