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10시 15분,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 안국점 앞. '근로시간 입증자료를 제공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사라졌다.
종로구청이 "어린이 보호구역 앞 현수막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을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해 제거한 것이다.
해당 현수막은 지난 27일 진보당 손솔 의원이 숨진 20대 직원의 과로사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설치한 것으로, 아래에는 추모의 국화꽃이 놓여 있기도 했다.◇외국인 단체 관광 코스 런베뮤, 국내 불매 여론 '무풍지대'
국내에서 런베뮤 불매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현수막이 내려간 자리 맞은편에는 여전히 수십명의 손님의 대기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예약 앱 '캐치테이블'에는 약 100명이 대기 중이었고, 매장 앞을 둘러보면 90%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주변에서는 영어·일본어·중국어가 뒤섞였고, 한국어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일본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유미(22) 씨는 "런던베이글에서 직원이 과로사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며 "일본에서도 이곳은 '한국 오면 꼭 가야 하는 카페'로 유명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단체 관광으로 왔다는 40대 주부 진웨 씨 역시 "그냥 관광 코스에 포함돼 있어서 들른 것"이라며 "논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런베뮤 불매'를 외치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 런베뮤는 여전히 'K-핫플(핫플레이스)'로 인식되고 있다. 불매 운동이 확산하는 와중에도 매장은 평소처럼 붐볐고, SNS에서는 여전히 '런베뮤 인증샷'이 끊이지 않는다.◇"눈물 젖은 빵 어떻게 먹냐"…국내 여론은 냉랭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를 선언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추모 현수막이 앞에 떡하니 있는데 먹고 싶을까", "앞으로 평생 불매한다", "주변 사람이 사 먹으면 눈치 줄 거다", "눈물 젖은 빵을 어떻게 먹냐"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일부 누리꾼은 현수막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공유하며 "대단하다, 같은 노동자가 아닌가 보다", "회사가 직원 대우를 정말 잘해주나 보다"라는 냉소적인 댓글을 달았다.
런베뮤뿐 아니라 계열 브랜드인 '카페 레이어드', '카페 하이웨스트', '아티스트 베이커리'까지 불매 리스트에 올랐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같은 운영사 제품은 사지 말자"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전·현직 직원이라 주장하는 인물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한 SNS 이용자는 "런베뮤에서 근무했었는데, 언제 논란 터지나 했다"며 "3개월 단위로 계약서를 나눠 쓰고, 시말서가 5장 이상이면 본사 안국점에서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3개월 단위로 계약서를 끊어서 책잡힐 일 생기면 계약 종료시키는 방식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폭로자는 런베뮤와 같은 운영사의 카페 레이어드 직원의 지인이라며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도 고쳐주지 않아 홀과 주방이 35도를 넘었다"며 "매출이 안 나오면 야근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며 지인과 나눈 카톡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내 불매 운동이 진행되는지 알 수 없고, 런던베이글뮤지엄은 그저 안국의 유명 관광 코스로 인식될 뿐"이라며 "이 상황을 모르는 외국인들까지 비난하거나 사진으로 공개해 조롱하는 것은 선을 넘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불매 운동은 개인의 자유지만,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히 외국인 손님이 몰린다고 비판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 나라의 사회적 사건과 관광을 자연스럽게 분리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의 경우, 해당 사업장이 안전이나 노동 환경 등에서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나면 SNS를 통해 공유되며 윤리적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세계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아프리카 공정무역 커피처럼 특정 국가의 문제에 다른 나라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글로벌 이슈로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다만 모든 소비 관련 이슈를 과장하거나 사실 확인 없이 퍼뜨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정보를 공유하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휩쓸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20대 직원의 죽음으로 촉발된 '과로사 의혹'
런던베이글뮤지엄 논란의 발단은 지난 7월이다. 인천점에서 근무하던 20대 직원 A씨가 회사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다.
유족 측은 "신규 지점 오픈 준비와 운영 업무를 병행하며 주 58~80시간 장시간 노동을 했다"며 과로사를 주장했다. 사망 전 일주일 동안 약 80시간을 근무했고, 사망 전날에는 식사도 하지 못한 채 15시간가량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운영사 엘비엠(LBM)은 "직원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43.5시간이며, 고인의 평균은 44.1시간이었다"며 "주 80시간 근무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다만 "지문인식기기의 오류로 실제 근무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회사는 "신규 오픈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았으나, 인력을 추가 파견해 지원했다"고 해명했다.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회사의 대응이었다. 유족 측은 회사 임원으로부터 "과로사로 무리하게 산재를 신청하면 진실을 알고 있는 직원들이 반박할 것", "양심껏 모범 있게 행동하시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임원이 직원들에게 '입단속'을 지시한 정황까지 드러나며 비판 여론이 폭발했다.
결국 강관구 대표는 SNS에 사과문을 올려 "사건 초기 현장 담당 임원의 대응이 부적절했다"며 "유족분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하자 고용노동부는 전날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과 본사에 대한 기획 감독에 착수했다. 점검 항목은 △주 52시간제 준수 여부 △근로계약서 작성의 적법성 △휴가·휴일 부여 △임금 체불 여부 등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유명 카페에서 미래를 꿈꾸던 청년이 생을 마감한 것이 가슴 아프다"며 "법 위반이 확인되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021년 안국동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 7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줄 서서 먹는 베이글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며 올해 7월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2000억 원대에 엘비엠을 인수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