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활동 이어온 하겐 콰르텟...은퇴 전에 한국 온다

입력 2025-10-29 14:30
수정 2025-10-29 14:31
“현악 사중주는 네 명의 지식인이 나누는 대화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현악 사중주는 실내악의 정수로 꼽힌다. 바이올리니스트 2명과 비올리스트, 첼리스트가 내밀한 살롱에서 속삭이듯 긴밀히 호흡을 이어가는 연주는 대편성 교향악에선 맛보기 어려운 섬세함의 극치를 선사한다. 45년째 이 사중주 연주를 계속해왔던 오스트리아 실내악단이 한국을 찾는다. 내년 은퇴를 앞두고 선보이는 마지막 내한 공연이다.



목프로덕션은 “하겐 콰르텟이 다음 달 8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고 29일 발표했다. 하겐 콰르텟은 1981년 루카스, 안겔리카, 베로니카, 클레멘스 등 잘츠부르크 하겐 가문의 네 남매가 만든 가족 앙상블이다. 제2 바이올린을 맡았던 안겔리카가 떠난 자리에 라이너 슈미트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다. 이 악단은 198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활약한 뒤 세계적인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하겐 콰르텟이 낸 앨범은 50여장에 달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쇼스타코비치 등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죄르지 쿠르탁, 외르크 비트만과 같은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두루 섭렵했다. 빈 콘체르트하우스, 런던 위그모어 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등 이름난 공연장을 두루 돌면서 관객들도 꾸준히 만났다. 악단은 내년 여름에 은퇴한다. 악단 막내였던 1966년생 클레멘스 하겐은 어느새 나이 예순을 앞두고 있다. 통상 악단이 활동을 끝내는 경우엔 해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악단은 연주자 간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에서 은퇴란 단어를 골랐다.



이들의 내한 공연은 2016년 이후 9년 만이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투어의 일환이다. 다음 달 8일 포항 공연은 포항국제음악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하겐 콰르텟은 바흐 ‘푸가의 기법’ 중 대위법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8번,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5번 등을 연주한다. 9일 서울 공연은 겹치는 레퍼토리가 없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6번, 베베른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5개의 악장’, ‘현악사중주를 위한 6개의 바가텔’을 들려준다.

공연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는 하겐 콰르텟만의 슈베르트 해석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죽음이 어린 소녀를 안락함으로 유혹하는 과정을 현악으로 풀어가는 게 이 곡의 묘미다. 다음 달 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체코의 파벨 하스 콰르텟도 죽음과 소녀를 연주한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6번도 겹치는 레퍼토리인 만큼 두 악단의 해석을 비교해 들어볼 만하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