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젠 친중이나 반중이 아니라 지중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50여명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중국의 산업 발전과 대중 전략'을 주제로 한 강연이 열렸다. 한·중 의원 연맹 주관의 정책 세미나였다. 강연자는 양걸 중국삼성 사장.
11년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는 등 한·중 관계가 회복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만큼 중국 현지 산업과 정책에 대한 의원들의 정보 수요가 높아져서다.
수십년간 반도체와 중국 경영 현장에 몸 담고 있는 양 사장은 관련 팀을 꾸려 몇주간 '현장에서 본 중국 산업의 발전과 대중 전략' 관련 자료를 준비했다. 특히 중국 과학기술, 첨단산업의 급성장 배경과 현지 소비 흐름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요약했다.
이 자리에서 양 사장은 인(In) 차이나, 포(For) 차이나, 인포(Info) 차이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그간 국내에서 연구개발(R&D)을 진행한 후 중국에서 제조·생산하던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상품 기획, R&D, 제조, 세일즈, 마케팅, 애프터서비스를 모두 현지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서 탈피해 중국에서 직접 공장을 운영하고 공급망도 갖춰야 한다"며 "삼성전자 역시 스마트폰의 부품 공급을 위해 중국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시장을 부품 공급이나 생산의 중간 경유지가 아닌 최종 종착지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양 사장의 주장이었다.
이날 참석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 모두 양 사장의 중국 현지에 대한 분석과 의견에 상당 부분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사장의 강연은 지난 28일 중국에서 또 한번 이어졌다. 베이징 힐튼호텔에서 열린 중국한국상회 주최 모닝포럼에서다. 베이징에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는 상당수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이 양 사장의 한국 강연을 동일하게 듣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노재헌 신임 주중한국대사 역시 이날 모닝포럼에 참석해 양 사장의 강연을 끝까지 들었다. 주중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 중심으로 진행되는 모닝포럼에 주중한국대사가 참석하는 건 이례적이다.
모닝포럼에서 양 사장은 "중국은 2017년과 비교해 지난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 글로벌 스탠더드 국가와의 교역량이 줄어든 반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남미, 아프리카, 러시아 등으로 수출 비중은 늘었다"며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를 대비한 전략을 기울여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시장이 14억 인구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지만 동남아와 남미·중동·아프리카·동유럽 등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세계는 글로벌 스탠더드 시장과 또 다른 시장으로 나눠지고 있어 앞으로 중국을 놓치면 세상의 반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 참석한 김재덕 산업연구원 베이징지원장은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정확한 사업 방향을 수립할 수 있다는 '지중 전략'은 중국 시장으로 재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에 꼭 필요한 관점"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