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그림을 그리고, 인공지능(AI)이 시를 쓰는 시대. 인간의 창의성과 감정은 여전히 유효할까. 오혜진 카네기멜런대 교수(사진)는 2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감정을 증폭시키는 도구”라며 “AI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11월 5일 개막하는 ‘글로벌 인재포럼 2025’에 연사로 참여하는 오 교수는 예술과 로봇, 기술을 결합하는 새로운 협업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 ‘AI 예술공학’ 분야의 전문가다. 현재 카네기멜런대 예술대학과 로봇공학연구소를 아우르는 융합연구팀을 이끌며 인간과 기계의 협업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그는 AI 연구의 목표를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오 교수는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명령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상을 함께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의 핵심은 결국 창의성과 협업”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의 연구는 단순히 ‘감지하고 움직이는 로봇’을 넘어선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공간과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하는 AI’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AI가 스스로 상상하고 인간과 함께 만들어 가는 존재가 돼야 진정한 협업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같은 철학은 예술적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그림 그리는 로봇 ‘프리다(FRIDA)’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처음엔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며 로봇이 대신 그려주길 바라지만, 로봇이 붓을 들면 모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며 “프리다는 인간의 참여를 유도해 ‘no’를 ‘yes’로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실험은 예술을 넘어 인간의 행동과 감정 연구로 확장되고 있다. 무용가와의 협업을 통해 로봇이 그린 선을 보고 댄서가 새로운 동선을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AI는 인간이 미처 몰랐던 가능성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 교수는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에는 반드시 ‘안전’이 전제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AI가 인간의 말을 그대로 수행하면 편리하겠지만, 동시에 위험할 수 있다”며 “AI의 행동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물리적·심리적 안전에 관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AI의 판단이 편향되지 않도록 ‘데이터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데이터 중심 사회에서는 소수 집단의 데이터가 부족해 AI가 내리는 판단에서 차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더라도 인간 창의성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는 단언한다. 오 교수는 “AI 덕분에 인간은 더 많은 시도를 짧은 시간에 해 볼 수 있지만, 창조의 결정적 순간은 여전히 인간의 손끝에서 완성된다”면서 “AI와의 공존은 대체가 아니라 ‘확장’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