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 앞둔 정리매매…'이상 급등' 쏟아졌다

입력 2025-10-28 17:40
수정 2025-10-29 02:58
상장폐지를 앞둔 종목의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헐값에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세력과 방어하려는 기업이 경쟁적으로 지분 매집에 나서면서다. 정리매매 특성상 상하한가 제한이 없다 보니 ‘단타’로 수익을 내려는 투기적 수요도 몰리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엔지니어링업체 세원이앤씨는 지난 16일 정리매매 기간 첫날 주가가 88.74% 급등했다. 시초가 115원에서 급등락을 반복하다 217원에 마감했다. 다음날에도 장중 시초가 대비 세 배 가까이 올랐다. 최대주주가 지분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영향이다. 세원이앤씨 최대주주는 약 26억원을 들여 정리매매 기간 지분율을 22%에서 44%로 두 배가량 늘렸다. 세원이앤씨는 24일 121원에 거래를 마쳤고, 2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됐다.

지난달 10일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 이화전기는 정리매매 기간 주가가 273% 넘게 뛰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이자 사무용 가구업체인 코아스가 175억원을 투입해 이화전기 지분 약 35%를 확보하면서다. 이화전기 최대주주인 이트론이 기존 25%이던 지분율을 50%까지 늘리자 주가 변동성은 더 커졌다. 1일 코아스가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상장폐지된 대유도 정리매매 기간 주가가 86% 뛴 사례다. 비료 제조업체 조비가 대유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분 약 18%를 매입하자 주가가 요동쳤다. 대유 대주주인 조광ILI는 이에 맞서 지분을 27%에서 48%로 확대하며 경영권을 지켜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재무 상태가 양호한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분석한다. 단순한 기업 부실이 아니라 경영진의 비위로 상장폐지가 결정된 경우 기업가치가 유지돼 있어 인수 대상으로 주목받기 쉽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업계 관계자는 “새 투자자가 경영권을 확보하면 과거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기존 최대주주가 이를 막기 위해 지분 매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은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되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주가가 급등하더라도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는 손실을 회복하지 못하고, 대주주만 헐값에 주식을 사들여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리매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리매매는 거래정지 후 상장폐지 전 7일간 거래가 가능하며 하루 상하한가 제한이 없다. 한 주주행동주의 단체 관계자는 “정리매매는 원래 최종 매매 기회를 제공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상장폐지 사태를 초래한 기존 경영진이 정리매매 기간 오히려 지분을 확대해 지배력을 키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며 “상장폐지 책임이 있는 사측의 책임을 강화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