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산업 분야에서 일대 혁신을 이끄는 인공지능(AI)이 영상 창작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던 감독이 키보드 앞에 앉고, 조명감독 대신 인공지능이 빛을 설계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고려대 미디어대학 김성재 씨가 발표한 논문 ‘AI를 활용한 영화 제작 연구’에 따르면 AI는 시나리오부터 촬영, 편집까지 영화 제작 전 과정에 관여하고 있다. AI 영화의 대표작인 CJ ENM의 ‘M호텔’ ‘나야, 문희’ ‘원 모어 펌킨’이 잇달아 개봉하면서 기술적 완성도는 이미 입증됐다. 감독이 스토리를 입력하면 AI가 자동으로 장면을 생성하고 구도와 조명, 배우 움직임까지 제안한다. 콘티를 짜지 않아도 프롬프트 한 줄로 원하는 장면을 뽑아낼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완전 자동화가 아닌 ‘반자동형 제작 시스템’이 주류다. 감독이 AI가 제시한 장면을 검수하고 세부적인 조도나 색 보정을 다시 손보는 식이다. 그럼에도 제작 효율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제작 기간은 기존의 절반 이하로 줄었고, 저예산 독립영화도 상업 영화급 품질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AI 기술 확산은 영화산업의 직업 구도도 흔들고 있다. AI에게 명령어를 입력해 영상 결과물을 제어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감독’(prompt director)이 영화감독 자리를 위협한다.
촬영, 컴퓨터그래픽(CG), 조명 등 전통적 제작 파트의 인력도 대체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감독의 스타일과 의도를 입력하면 복잡한 미장센과 조명 디자인까지 스스로 구현하며 최종 영상을 생성한다. 카메라와 조명을 다루던 촬영감독의 역할이 상당 부분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촬영 후 편집인 ‘후반 작업’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색 보정은 ‘오토 컬러(auto color)’ 기능으로 자동 처리되고, 컷 전환과 신 구성은 딥러닝 알고리즘이 리듬과 서사에 맞춰 자동 편집한다. 디즈니는 이미 AI 기반 색 보정 시스템을 도입했고, 폭스는 공상과학(SF) 영화 ‘모건’의 트레일러를 AI로 편집해 화제를 모았다. 단순 컷 편집이나 기술적 보조 업무를 담당하던 인력은 빠르게 설 자리를 잃고 있다.
AI 영상 제작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연구에 참여한 한 미술감독은 “AI는 감성보다는 계산에 충실하다”며 “관객이 공감할 ‘순간의 창의력’은 여전히 사람 몫”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AI를 단순한 효율 도구가 아니라 ‘창작 파트너’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연구진은 “AI 고도화는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