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용료 "미국기업 차별 안한다" 약속…韓 비관세 장벽 어떻게 낮췄나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5-10-28 18:16
수정 2025-10-28 18:19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27일(현지시간) 한국과의 무역협상에 관해 “한국이 꽤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비관세 장벽이 있었고 이번 협상에서 그런 문제들이 상당부분 정리됐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취재진에게 이같이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차질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그런 차질은 없다”고 말한 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그리어 대표에게 부연설명을 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그리어 대표는 한국 관련 협상이 안보 및 무역 등 여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면서 무역 분야의 이슈 중 비관세 장벽이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상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가 언급한 비관세 장벽 중 미국 측에서 신경을 쓰는 부분은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같은 디지털 분야다.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미국 빅테크들은 망 사용료 등의 문제에서 한국이 ‘선례’가 되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이 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전도 활발하다.

지난 7~8월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이 문제에 관해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거의 합의를 이뤘다. 망 사용료나 온라인 플랫폼법 도입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진 않았지만, 예컨대 중국 기업은 제재 대상에서 빠지고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만 제재를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농산물 분야의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꼽히는 것은 검역 문제다. 한국 측이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과 같은 분야에 대해 지나치게 까다롭게 굴고 있다는 것이다. 또 ‘파마산 치즈’나 ‘살라미 소시지’와 같이 지역명이 관련돼 있지만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에는 지리적표시 보호 규정을 완화해달라는 것이 미국 측 요구다.

이외에 미국 농산물 전용 검역 절차를 둬서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 가운데 GMO나 지리적표시 규정에 대해서는 과도한 규제라는 미국 측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패스트트랙은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담당 인원 배정 등을 통해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또 미 연방자동차 안전기준(FMVSS)을 충족하는 자동차는 한국 안전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안전기준의 차이가 미국산 차량이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원인이라는 미국 주장을 받아 준 것이다. 지금까지는 브랜드별로 연 5만대까지 이런 동등성 기준을 적용했으나, 앞으로는 그런 상한선을 없애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현재도 특정 미국 자동차 브랜드가 5만대 이상 판매대수를 기록하는 경우가 없어, 이는 상징적인 조치에 가깝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기업을 조사할 때 사측과 변호사가 나눈 대화 내용을 비밀로 유지할 수 있는 ‘비닉특권(ACP)’을 기업에 부여하는 데도 양측은 합의를 이뤘다. 로펌 사무실을 압수수색해서 고객과 나눈 대화내용 일체를 확보하는 식의 과도한 조사 관행을 끊고, 기업의 대항권을 보다 인정해주겠다는 취지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