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인 ‘철강산업 진흥 및 탈탄소 전환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K-스틸법)을 두고 산업계와 환경단체 전문가들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산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위기에 대응할 ‘산업안보법’으로 평가하는 반면, 기후솔루션 등 환경단체는 탄소중립은 명분에 그치고 실질적 감축 체계가 결여됐다고 지적한다.
산업계 “골든타임 놓치면 철강산업 기반 무너져”
K-스틸법은 지난 8월 여야 의원 106명이 공동발의한 후 권향엽·어기구·김정재 의원 등이 보완 입법안을 잇따라 냈지만, 상임위원회 논의는 답보 상태다. 법안은 철강산업을 국가경제와 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다.
또 수소환원제철 등 녹색 철강 기술을 지정해 세제감면·보조금·융자지원을 가능하게 하고, ‘녹색철강특구’를 통해 인허가 간소화 및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규제 완화도 포함했다. 부적합 철강재 수입 규제, 덤핑 대응 등 무역 방어 장치 강화도 핵심이다.
철강업계는 이를 생존법으로 보고 있다. 중국산 저가 공세와 글로벌 공급 과잉, 각국의 보호무역 강화 속에서 산업 경쟁력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생이 어렵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 등 신기술 투자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하다”며 “정부의 제도적 지원 없이는 탈탄소와 경쟁력 강화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서도 전기요금 인하, 노후 설비 교체 지원 등 현실적 보완책의 미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솔루션 “탄소중립은 구호뿐… 감축 목표·책임 구조 부재”
기후솔루션은 K-스틸법이 5년 단위 기본계획, 정부·산업계 중심의 특별위원회, 기술개발·세제지원·보조금 등 포괄적 지원 근거를 담고 있지만 탄소중립이 경쟁력 강화의 ‘하위 개념’으로만 취급되고 있어 “녹색 전환이 아닌 산업 유지 중심의 정책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법안이 2050년 탄소중립만 명시할 뿐, 2030 중간목표나 기업별 감축 의무가 없다고 지적했다. 감축 로드맵 제출, 점검 체계가 없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 실질적 감축 성과와 연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GX(녹색 전환)법이나 유럽연합(EU)의 배출권거래제(ETS)처럼 중기 감축목표를 명시하고 지원을 성과와 연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녹색 철강 기술과 청정 수소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안은 지원 대상 기술을 녹색 철강 기술로 규정하지만 탄소저감량, 에너지원, 제품 단위 탄소집약도 등 객관적 지표가 없다. 이 때문에 감축 효과가 미미한 기술도 ‘녹색’으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EU의 이노베이션 펀드(Innovation Fund)는 기술의 예상 감축량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며, 일본 GX법은 검증된 수소환원제철 기술만 지원 대상으로 한정한다.
기후솔루션은 K-스틸법이 청정 수소를 포괄적으로 정의해 탄소감축 효과와 무관하게 보조금이 집중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수소 생산 시 탄소배출량(kgCO₂e/kgH₂)에 따라 세액공제를 4단계로 차등 적용하고, EU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 수소’만 우선 지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K-스틸법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개념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피해 완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철강산업특별위원회의 구성도 산업계 중심으로 짜여 있어 노동계·지역사회·시민사회가 배제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CC)처럼 독립적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울러 K-스틸법이 단순한 산업지원법을 넘어 전환법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핵심 개선 방향으로는 ▲2030 감축 목표 명시 및 기업별 로드맵 의무화 ▲감축 성과와 재정지원의 조건부 연계 ▲녹색철강 기술 정의 명확화 ▲청정 수소 탄소집약도 기준 마련 ▲고로 폐쇄 및 전기로 전환 지원 등을 제시했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