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확대, 공급망 안정, 기후위기 대응 등 굵직한 합의를 이끌어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20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열렸다. 경북 경주에서 개최되는 이번 APEC 정상회의에는 21개 회원국 정상이 참석해 인공지능(AI), 인구구조 변화, 경제안보 등 새로운 의제를 논의한다.
APEC은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출범해 1994년 정상회의 체제로 격상됐다. 회원국은 21개국, 인구는 약 30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38%를 차지한다. 2023년 기준 회원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67조8000억달러로 세계 경제의 61%에 달한다. 세계 상품 교역의 절반 이상이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은 회원국 GDP의 70%를 차지하며 사실상 APEC 핵심 축을 형성한다.
역대 정상회의는 APEC 위상을 높이는 합의를 남겼다.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 회의에서는 무역·투자 자유화를 목표로 한 ‘보고르 선언’이 채택됐다. 2005년 부산 회의는 한국의 선진국 도약을 알린 계기로 평가됐고, 2014년 중국 베이징 회의에서는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논의가 공식 의제로 올라섰다. 202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는 ‘금문교 선언’이 채택돼 기후위기와 디지털 전환 대응이 공동 과제로 설정됐다.
회원국 간 경제적 연계도 뚜렷하다. 전체 교역의 60~80%가 역내에서 이뤄지며, 한국 역시 교역의 65% 이상을 APEC 회원국과 주고받는다. 수출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이 지역에서 발생할 정도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협력 효과는 성장률에서도 나타난다. 2023년 APEC 지역의 실질 GDP 증가율은 약 3.5%로, 2%대 초반인 세계 평균을 웃돌았다.
올해 경주 회의에서는 디지털 격차 해소, 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이 우선 과제로 제시됐다.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산업 공급망과 기후금융 문제도 주요 논의 대상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미래 경제 질서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회의 장소가 지니는 상징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APEC이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위기 상황마다 정책 공조로 대응해왔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녹색성장, 디지털 격차 해소, 포용적 협력 같은 의제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하지은/김대훈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