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입센의 <유령>은 19세기 도덕, 종교, 관습을 비판적으로 그린 사실주의 연극이다. 주인공은 알빙 부인. 그는 죽은 남편의 이름을 내건 고아원 개관을 하루 앞두고,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와 진실을 폭로한다. 당시 사회에서는 차마 소리 내 말할 수 없었던 내면의 답답함, 시대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입센의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노르웨이어 원제 'Gengangere'는 '다시 걷는 자(again-walker)'를 뜻한다. 망령, 유령, 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오는 사람이나 현상을 뜻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과거의 잔재, 그것이 입센이 말한 '유령'이다.
<유령>은 1881년 노르웨이 서쪽 피오르드와 접한 시골마을, 알빙 부인의 대저택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알빙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명망 있는 가문의 여인.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의 명예를 지키고자, 그의 추악한 과거를 평생 숨기며 살아왔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에 갇혀있고, 종교나 도덕, 관습,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입센의 유령을 양손프로젝트가 '유령들'로 재해석했다. 양손프로젝트는 작품 선정부터 각색, 연출, 연기까지 모든 과정을 네 명이 함께 논의하는 공동창작집단. 2011년 결성 이후 <전락>, <데미안> , <여직공> 등 문학 작품을 무대에 옮기며 자신들만의 언어로 연극의 가능성을 확장해왔다. 내부 논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으면 절대 무대에 올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려한 무대 장치 없이, 배우의 역량만으로 극을 이끄는 이들의 방식은 연극 본연의 힘을 보여준다.
<유령들>은 박지혜 연출, 배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이 함께했다. 이들은 원작의 밀도와 주제의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LG아트센터 유플러스 스테이지 무대는 관객이 사방에서 감상하는 '아레나' 형식. 무대 위에는 의자 하나만 놓여 있고, 세 명의 배우가 다섯 인물을 연기한다. 인물들의 내면과 시대의 유령은 대사와 몸짓으로 표현된다.
양손프로젝트 특유의 미니멀리즘 미학이 극대화된 무대다. 복잡한 장치나 전환 없이, 인물의 언어만으로 주제를 전달한다. 번역투를 걷어내고, 일상적이고 구어체에 가까운 대사로 재구성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19세기 노르웨이 시골이지만 2025년 서울로 옮겨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연출을 맡은 박지혜는 "실제로 뱉는 말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 입센의 원작은 우회적인 표현이 많고 문장이 길지만 <유령들>의 대사는 현실 언어처럼 직접적이다.
의상이나 소품도 특정 시대를 암시하지 않는다.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 속에, 인물들은 어느 시공간에도 속하지 않은 듯 '툭' 떨어져 있다. 그 무심한 공간 속에서 관객은 더욱 대사와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이 연극의 중심은 알빙 부인과 목사 만데르스의 대화다. 1막에서 이들의 대사는 도덕과 종교의 위선을 정면으로 겨눈다. 목사는 종교의 이름으로 개인의 사고를 억압하고,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는 인물. 책을 읽는 알빙 부인을 "쓸데없이 남의 생각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며 꾸짖고, 파리에서 온 부인의 아들을 "문란한 생각으로 사회를 오염시키는 존재"로 단죄하는 모습은 종교가 인간의 사고를 얼마나 제약하는지 보여준다.
점점 극이 고조되면서 알빙 부인은 진실과 직면한다. 그는 "나는 매일매일 무서워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너무 무서워요. 죽은 생각들이 우리를 다 조여요."라며 절규한다. 이어 그녀가 내뱉는 "우리의 부모, 부모의 부모도 살아 있어요. 죽은 생각들도 살아 있어요."라는 대사는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죽은 생각들'은 사회적 규범, 도덕, 신앙, 체면 같은 것들. 이는 살아 있는 인간의 영혼을 옥죄는 무형의 억압, 곧 유령으로 상징된다. 19세기 입센이 쓴 이 대사처럼 유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알빙 부인이 평생 원했던 고아원은 개관 하루 전, 불길에 휩싸여 무너진다. 이 파국은 곧 해방을 은유한다. 부인은 죽은 생각들로 속박된 사슬을 끊고,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극의 마지막. 아들 오스왈의 대사는 계속 반복된다.
"엄마, 나에게 햇빛을 주세요.(Give me the sun.) 햇빛을 주세요. 햇빛을 주세요."
이 한 문장은 인간의 생명력, 진실을 향한 갈망,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빛'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절규는 단지 오스왈의 것이 아니라 관객들,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90분의 짧고도 밀도 높은 시간이 끝나고, 화려한 커튼콜은 없었다. 배우들은 조용히 인사하고 박수받고 퇴장했다.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흩어지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묵직한 질문들이 남았다. '내 주변의 죽은 생각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어떤 유령과 함께 살고 있을까.'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