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파리 아트 위크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소식과 함께 막을 올렸다. 루브르 박물관 보석 도난 사건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트 바젤, 아시아 나우, 디자인 마이애미 등 다양한 문화 행사와 전시가 파리 곳곳에서 열렸다.
그중 가장 큰 행사인 아트 바젤 파리는 올해로 4주년을 맞았다. 그랑팔레의 유리 돔 천장 아래에는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온 206개 국제 갤러리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8미터 높이의 유머러스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의 핑크빛 문어 설치물이다. 무라카미가 만든 이 설치물은 루이비통과의 20년 협업을 기념하며 아트 바젤을 위해 11개의 새로운 가방 디자인을 선보이며 방문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하지만 부유한 미술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한 아트 바젤은 일반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행사는 아니다. 입장권 가격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저렴한 1일권이 45유로(약 7만 5천 원), VVIP 프리미엄 티켓은 무려 1300유로(약 218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아트 바젤은 대중을 위한 <공공 프로그램>을 통해, 파리의 명소 9곳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여 무료로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하였다. 특히 루브르 미술학교 학생들이 각 전시 장소에 배치되어 방문객들에게 안내와 정보를 제공하였다.
방돔 광장에 나타난 청개구리
무라카미의 핑크빛 문어 설치물과 함께 첫날부터 공공 프로그램의 스타로 떠오른 작품은 방돔 광장에 설치된 알렉스 다 코르테(Alex Da Corte)의 작품, 머펫 쇼(Muppet Show)의 개구리 캐릭터 커밋(Kermit)이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인 광장의 위엄을 해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작가는 1991년 뉴욕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서 커밋 풍선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바람이 빠지며 무너지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바람 빠진 개구리의 얼굴과 축 처진 몸은 즐거움과 순수함의 상징이던 어린 시절이, 한순간에 연약함과 환멸의 상징으로 바뀌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개구리의 초록색은 환경 보호를 정치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현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이나 <이방인>처럼 미국 실존주의 속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복잡함을 상징한다.
거대한 야외 조각 공원, 윈스턴 처칠 거리
그랑팔레와 쁘띠팔레 사이의 윈스턴 처칠 거리는 행사 기간 동안 거대한 야외 조각 공원으로 변신한다. 거리에는 노천카페도 들어서 예술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레이코 이케무라(Leiko Ikemura)의 전설 속의 토끼 귀를 가진 조각품과 토머스 하우스아고(Thomas Houseago)의 꽃과 죽음(Flower & Death) 토템 조각은 서로를 바라보듯 나란히 서 있다. 그 사이에는 지구를 다정하게 끌어안은 신화 속 인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보이테크 코바지크(Vojt?ch Kova?ik)의 작품이 자리한다.
또한 아를린 셰쳇(Arlene Shechet)의 핑크 알루미늄 조각은 종이를 접은 듯한 가벼움으로 공간에 리듬을 더한다. 그리고 왕 커핑(Wang Keping)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곡선의 조각 작품은 손끝으로 그 부드러운 질감을 느껴보고 싶게 만든다.
동물원이 된 쁘띠팔레
쁘띠팔레 안에는 율리우스 폰 비스마르크(Julius von Bismarck)의 <방 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 작품이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실제 크기의 기린과 비스마르크의 기마상이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조립을 반복하는 대형 키네틱 조각이다. 이 작품은 <방 안의 코끼리>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식민지 착취와 권력의 관계를 드러내며, 이들의 반복되는 변형 과정을 통해 역사 속의 불안정성을 표현한다.
전통적 건축미와 현대 예술의 조화
우고 론디논(Ugo Rondinone)의 단순하지만 강렬한 조형물은 프랑스 학회(Institut de France) 앞에 설치되었다. 그의 <이노센트>(Innocent) 작품은 땅과 돌에 대한 물리적 연결을 떠올리게 하며 프랑스 전통 건축물 속에 설치되어 상반된 과거와 현대의 만남으로 재탄생한다.
조엘 안드리아노메아리소아(Joel Andrianomearisoa)는 호텔 드 라 마린(Hotel de la Marine) 중정에 나일론, 플라스틱, 폴리에스터 실로 만들어진 초록색 정글 조형물을 설치하여 건축물과의 강렬한 색 대비를 연출한다.
쁘띠 오거스틴 예배당(Chapelle des Petits-Augustins)에 설치된 해리 누리예프(Harry Nuriev)의 작품 <분실물>(Objets Trouves)은 방문객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설치 작품으로, 서로가 물건을 교환하는 나눔의 공간이다. 방문객들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가져와 준비된 상자에 놓아두고,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간다. 이 모든 나눔의 일시적 행위는 영구적인 예술 작품으로 기록된다.
또한 아트 바젤 공공 프로그램의 공식 파트너인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미우미우(Miu Miu)는 이에나 궁전(Palais d'Iena)에서 <30개의 눈보라>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조각, 영상, 패션 그리고 내레이션으로 구성되며, 3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어린 시절, 성, 부모의 역할 등의 테마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올해로 아트 바젤은 4주년을, 공공 프로그램은 3주년을 맞이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도록, 무료 예술 참여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성장하길 바란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