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바흐, 베토벤, 브람스 음악을 가르치는 건 한국에서 아리랑이나 판소리를 가르치는 일과 같다. 독일인들이 나고 자랄 때부터 모국어처럼 익히고, 나라의 유산으로 귀중히 여기는 음악이라서다. 그래서 독일의 유서 깊은 음대에서 교수가 된다는 건 단순히 좋은 직함 하나를 얻는다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다.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 탁월한 리더십 등을 인정받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가에게만 주어지는 명패다.
그 자리를 꿰찬 인물이 한국에서 건너온 음악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 명문 베를린국립음대 초빙교수를 거쳐 뮌헨국립음대 전임교수, 학장 자리까지 오른 최초의 아시아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66·사진)의 얘기다. 뮌헨국립음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최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났다. 그가 1975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스위스 유학길에 오른 지 딱 50년 만이다.
“뮌헨국립음대에서의 정년 연장, 해외 음대 교수 제안 등을 모두 거절하고 한국행을 택한 건 내 나라에서 한 번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가 2004년부터 19년간 재직한 뮌헨국립음대는 유럽 최고 음대 순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이다. 지휘자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등을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그는 2020년 아시아인 최초로 뮌헨국립음대 학장으로 선임돼 5년간 자리를 지켰다.
“뮌헨국립음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건 ‘자기만의 소리와 생각’을 키우는 거예요. 예술에서 개성이 없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유럽 클래식 음악 교육의 최전선에서 30년 넘게 활동해온 이미경은 “이제 한국 클래식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주입식, 줄 세우기 교육이 콩쿠르에서 우승자를 배출하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을 예술가로 성장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국제 콩쿠르 우승자가 많다는 건 클래식 강국을 나타내는 지표도, 훌륭한 음악가를 다수 보유한 나라라는 증표도 될 수 없어요.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죠. 1명의 영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99명의 예술가를 배출하기 위한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합니다. 콩쿠르 1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학생이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경쟁력과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온 건 올해지만, 그는 3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미마 아카데미(MIMA·Mi-kyung Lee International Music Academy)를 설립하면서다. 미국 예일대, 독일 뮌헨국립음대 등에서 모인 화려한 교수진에 매년 접수가 조기 마감돼 10여 명의 대기자가 발생하기 일쑤다.
이 아카데미의 특별한 점은 새벽 1시까지 선생님들의 방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궁금한 점이나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지 선생님을 찾아 질문하고 함께 논의한다. 레슨은 전부 공개로 진행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건 ‘좋은 소리’다.
“음악에서의 소리는 음식에서의 ‘맛’과 같아요. 단 1초 충격적인 맛이 느껴지면 평생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는 학생들에게 ‘2000명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만 울리면 된다’고 말한다.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건 잠시 놀라움을 주는 일에 그치지만, 감정의 동요를 만들어낸다는 건 일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준다는 의미에서다. “그게 바로 예술가란 증표죠. 제 클래스에선 남들과 비슷한 연주는 허용할 수 없어요. 흔한 비교, 경쟁도 없죠. 예술은 그냥 잘하는 것이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든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