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정산주기를 기존 60일에서 20일로 단축할 경우 플랫폼 생태계 전반의 사회적 후생이 연간 최대 19조원 줄고, 입점 중소업체의 생존율은 70%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상품을 직접 사입해 판매하는 직매입형 플랫폼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벤처창업학회는 지난 22일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 토론회를 열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자리에서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정산주기 단축 규제의 경제적 영향’을 주제로 발표하며 “정산주기를 일률적으로 20일로 줄이면, 자금 회전이 느린 직매입형 플랫폼의 현금흐름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특약매입(수수료형) 플랫폼은 납품업체가 판매 주체이므로 정산 단축의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직매입형 플랫폼은 상품을 직접 구매해 재고를 보유하는 구조라 운전자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쿠팡, SSG닷컴, 컬리 등 직접 물건을 구매해서 판매하는 플랫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번 연구는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정산주기 단축 입법 논의와 맞물려 있다. 지난해 ‘티메프 사태’ 이후 정부·여당은 납품대금 조기지급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개정안은 직매입 거래의 정산기한을 기존 60일에서 20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 교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산주기 단축의 경제적 효과를 정량 분석했다. 정산주기를 60일에서 20일로 줄이면 1년 후 플랫폼과 거래를 유지하는 입점업체 비율은 평균 74%로 떨어지고, 운전자본이 하위 50%인 플랫폼의 경우 48%에 그쳤다. 중소업체의 시장 피해액은 연간 최대 21조원, 사회적 후생은 약 8% 감소(19조원 손실)로 나타났다. 특히 직매입형 플랫폼의 주간 총거래액(GMV) 감소폭은 중개형보다 약 13.9%포인트 커, 연간 피해액이 7조7000억원에 달했다. 시장 집중도(HHI)는 16.5% 증가해 대형 플랫폼의 독점화가 가속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 교수는 “정산주기 단축의 취지는 납품업체 보호지만, 직매입 구조를 고려하지 않으면 오히려 중소상공인과 지역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약매입·직매입을 구분하고, 운전자본이 취약한 기업에는 예외와 유예를 두는 방식의 차등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