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출 갈아타기' 독려하더니…한도 줄고 금리마저 뛰었다

입력 2025-10-22 17:31
수정 2025-10-23 02:02
은행권 대환대출(갈아타기) 금리가 최근 6개월 사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대출 금리의 지표 역할을 하는 채권 금리가 급등한 데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은행들이 굳이 낮은 금리를 내세워 다른 은행의 고객을 빼앗을 유인이 줄어든 결과다. ‘10·15 부동산 대책’ 탓에 주택담보대출을 갈아타려면 수억원의 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 가운데 금리마저 오르면서 정부가 구축한 대환대출 플랫폼의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본지 10월 17일자 A1, 5면 참조 ◇주담대 대환대출 금리 급등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금리가 5년 간격으로 바뀌는 주기형 주담대의 대환대출 금리를 이날 연 3.86%로 책정했다. 지난 5월 22일(연 3.69%)과 비교하면 5개월 사이 0.17%포인트 상승했다. 동일 상품의 지난 17일 금리(연 3.89%)는 4월 4일(연 3.92%) 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우리은행의 주기형 주담대 갈아타기 상품 금리는 4월 말 연 3.49%에서 이날 연 3.84%로 반년 사이 0.35%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연 3.59→3.94%)과 신한은행(연 3.70→3.85%)의 고정금리형(5년) 주담대 갈아타기 금리 역시 모두 올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는데도 은행권 갈아타기 금리가 지난 반년 동안 일제히 상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지면서 국채 금리가 급등한 점이 주담대의 원가에 해당하는 은행채 금리를 밀어 올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금리는 이달 2일 연 3.025%로, 3월 27일 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이어지면서 은행권이 대환대출 영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유인이 떨어진 점도 갈아타기 금리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 임원은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부동산 중심의 대출 영업을 기업 중심으로 전환하라는 지침을 명확히 밝힌 만큼 대환대출 경쟁을 펼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갈아타기 촉진하던 정부 ‘자가당착’가계대출 억제 정책과 금리 상승이 맞물리면서 대환대출 규모는 빠르게 줄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7월 이뤄진 주담대 갈아타기 규모는 2945억원이었다. 전달(5908억원)에 비해 50% 줄었고, 전년 동월(9738억원)과 비교하면 70% 급감했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주담대 갈아타기가 수도권에선 사실상 불가능해진 만큼 앞으로 소비자의 대환대출 이용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의 담보인정비율(LTV)이 70%에서 40%로 낮아져 대환대출 한도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기존 규제에 맞춰 LTV 70%를 꽉 채워 주담대를 받은 차주는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대출 갈아타기를 시도하면 집값의 30%에 해당하는 기존 빚을 우선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가 대환대출 인프라를 앞장서 구축하면서 대출 갈아타기를 유도해 왔지만, 한도가 줄고 금리마저 뛰면서 공염불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의 이자 부담 절감을 유도하겠다며 2023년 5월 여러 금융사의 신용대출을 비교하고 모바일로 갈아탈 수 있는 비대면 대환대출 인프라를 구축했다. 작년 1월엔 비대면 대환대출 인프라 범위를 주담대로 확대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