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하는 제 모습이 싫을지언정 발레가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지난 21일 서울 노들섬의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나 강효정(40)은 담담한 어조로 발레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 “지금도 발레를 통해 인생을 배워요. 어렸을 때는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공연을 보러 와주신 분들에게 어떻게 저의 진심을 전할지 고민해요.”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강효정은 오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리는 서울시발레단의 더블빌 공연 ‘한스 판 마넨×허용순’ 무대에 객원 수석무용수 자격으로 오른다.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마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재독 안무가 허용순의 신작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스(Under the Trees’ Voices)’에 그가 선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허용순 선생님과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만 작업을 같이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시즌부터 아예 같은 단체에서 일하게 돼 앞으로 더 많은 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스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인 에치오 보소의 교향곡 2번을 안무한 서정적인 작품. 2024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발레단에서 초연한 뒤 1년 만에 서울에서 소개된다. 강효정은 “에치오 보소를 상징하는 파트너와 함께 그의 삶에 영향을 준 알바 파리에티 역할을 맡았어요. 컨템퍼러리 발레 전막 작품으로는 국내 관객을 처음 뵙는데,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강효정에게 컨템퍼러리 작품은 고전의 해체가 아니라 확장이다. 규율의 예술인 발레에 근거하지만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강효정의 여정은 일찍부터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입상해 바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존크랑코 발레스쿨에 입학했다. 졸업 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해 유럽에서 프로 경력을 쌓았다. 내한 공연으로 수차례 한국 관객과 만났다. 갈라 공연뿐 아니라 2010년대 초반 전막 ‘오네긴’에서 여주인공 타티아나로 서며 드라마 발레라는 장르를 한국 발레계에 각인시킨 주역이다.
강효정은 젬퍼오퍼 발레단 활동 시작과 함께 드레스덴의 팔루카 무용대학원에 진학했다. 무용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자신의 움직임을 학구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몸으로만 알던 걸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인데 이론이 정말 재밌어요. 사람의 다리 관절, 뼈, 근육을 생각하면 턴아웃도 단순히 다리를 붙이고 양발을 180도로 펼치는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강효정에게 무용은 인생의 선생님이자 삶에 불가결한 존재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했네요. 표현이 진부하지만 저를 숨 쉬게 하는 ‘공기’와 같은 게 무용이에요.” 발레가 단 한 번도 싫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처럼 연습실에서 마주한 강효정의 춤은 여전한 사랑의 형태로 벌떡이고 있었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