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누가 태우나”…롯데 vs 메리츠 PRS 재계약 '불발'

입력 2025-10-23 10:08
수정 2025-10-24 10:16
이 기사는 10월 23일 10:0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롯데케미칼이 메리츠증권과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조건을 놓고 충돌을 빚은 끝에 재계약 하루 전에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PRS는 롯데케미칼이 메리츠증권에 자회사 지분을 양도하고도 신용위험을 직접 부담하는 구조로, 통상적인 PRS와 달랐다. 롯데케미칼은 이런 계약 조건을 바꾸기 위해 메리츠증권과 계약을 종료하고 한국투자증권과 PRS 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한국투자증권과 PRS 계약 체결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메리츠증권과 재계약하지 않고 한국투자증권으로 눈길을 돌린 이유는 불리한 PRS 조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롯데케미칼루이지애나(LCLA) 지분을 담보로 메리츠증권과 6637억원 규모의 PRS 계약을 맺으면서 신용위험까지 떠안았다. 당시 부채상환 압박이 컸던 롯데케미칼이 급하게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메리츠증권에 유리한 조건으로 PRS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케미칼이 직접 신용위험을 부담하는 형태로 신용위험을 증권사가 떠안는 일반적인 PRS 계약과 다르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계약 직전까지 메리츠증권의 신용으로 PRS를 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자사 신용이 반영된 구조임을 인지하고 계약 하루 전에 파기했다”고 전했다.



PRS 계약의 신용 제공 주체는 발행사와 증권사 간 협의로 정해진다. 예를 들어 신용도가 높은 LG화학은 증권사가 신용을 제공하는 형태로 PRS를 발행하지만,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효성화학은 최근 PRS 체결 시 모회사 효성이 신용을 보강했다.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의 신용위험이 확대되는 상황이라 발행사 신용보강이 필수였다. 이 경우 발행사는 시장 금리 변동과 유동성 리스크를 그대로 떠안게 된다. PRS 일부는 기관투자가에게 셀다운(재매각)돼 3개월마다 롤오버(차환)되는데, 시장이 경색될 경우 롯데케미칼이 직접 상환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하는 구조라면, 채무불이행 발생 시 책임은 증권사에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재협상에서 이런 불리한 계약조건을 바꾸려고 했지만, 메리츠증권은 지난해와 동일한 계약조건을 고수하자 협상을 중단하고 다른 증권사로 발길을 돌렸다. 롯데케미칼은 이후 국내 주요 증권사에 의향을 타진한 끝에 전체 6600억원 규모를 한국투자증권이 인수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