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핫 종목 - 실리콘투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한국 수출 부문의 효자가 된 데에는 숨은 공신이 있다. 세계 곳곳에 K-뷰티 제품을 유통하고 유망 브랜드를 키워내는, 뷰티 전자상거래 플랫폼업체 실리콘투다. 실리콘투는 화장품 제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K-뷰티가 글로벌 트렌드를 주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밸류체인’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화장품 유통사를 넘어 K-컬처 수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K-뷰티 수출길을 열다
“실리콘투가 없으면 K-뷰티 수출길은 막힌다.” 많은 뷰티업계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다. 실리콘투는 온라인 도매 플랫폼에서 출발한 회사다. 사업은 CA(Corporate Account, B2B), PA(Personal Account, B2C), 풀필먼트 3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문별 매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CA 88%, PA 4%, 풀필먼트 8%로 CA 비중이 가장 높다. CA 부문에서는 주문받은 제품을 현지 물류 창고를 통해 고객에게 발송하고, 재고가 없으면 해상 또는 항공 등을 통해 현지 발송한다. 아마존, 구다이글로벌 등이 이 분야 경쟁사다.
PA 부문은 K-뷰티 역직구 플랫폼인 스타일코리안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진다. 해외 소비자들이 직접 주문하면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아직까지는 비중이 낮다. 역직구 사업의 한계도 있지만, 올리브영 등이 해외 직구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경쟁이 심화된 탓이다.
풀필먼트 부문은 인디 뷰티 브랜드의 해외 플랫폼 입점 및 운영을 위탁받는 방식이다. 조선미녀 등 한국 브랜드들이 인디 브랜드이던 시절 미국 아마존 셀러를 대신 해주는 식으로 사업이 진행됐지만, 최근엔 브랜드들이 성장하면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 분야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는 이유다.
실리콘투의 유통 시스템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물류·정산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초기엔 온라인 수출이 중심이었지만, 지역 거점(북미·유럽·동남아·중동 등), 자체 창고, 현지법인, 오프라인 접점을 순차적으로 구축하면서 ‘빨리 많이 파는’ 유통에서 ‘오래 안정적으로 파는’ 플랫폼으로 체질을 바꿨다.
대형 브랜드가 아닌 이상 각국의 규제와 유통 환경에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차별화된 노하우도 필요하다. 이를 돕는 것이 실리콘투의 주요 사업이다. 예를 들어, 북미는 라벨·광고·성분 규제 등이 까다로워 사업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유럽도 용기부터 성분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EU)의 까다로운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중동과 중남미는 현지 유통에 접근하는 진입 장벽 자체가 높다. 실리콘투는 기업의 이런 어려움을 해소해주면서 수익화 모델을 만들고 있다. K-뷰티 성장세와 회사 성장세가 같이 가는 이유다.
브랜드 인큐베이터 역할 충실
단순히 유통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유통형 인큐베이터 역할을 통해 사업모델을 다층화하고 있다. 첫째는 브랜드 소싱과 검증이다. 실리콘투는 500개가 넘는 K-뷰티 브랜드를 취급한다. 단순 입점이 아니라 각국의 규제, 광고 가이드, 포장 기준에 맞는지부터 살펴본다. 자외선 차단제, 미백 기능처럼 규제 변화가 잦은 카테고리는 라벨·성분 데이터베이스를 표준화해 사전 검증하는 식이다. 둘째는 데이터 기반 판매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다.
주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기별 발주량을 세밀하게 조정하며, 현장에서 실패한 브랜드는 빠르게 빼고 성장세인 브랜드는 집중 육성한다. 빠르게 변하는 뷰티 트렌드에 발맞춘 전략이다. 짧은 유통 과정도 장점이다. 한국·미국(동·서부)·유럽·동남아·중동 등에 둔 자체 창고에서 가까운 곳으로 바로 출고하는 시스템으로, 이동 거리와 리드타임이 줄어 재고를 관리하기 쉽다. 포장·운송·반품 과정의 비용도 줄어든다.
형권훈 SK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아마존은 이미 침투가 충분히 이뤄졌지만, 얼타와 세포라 등 시장규모가 큰 오프라인 채널 침투는 이제 시작 단계”라며 “K-뷰티 소비가 증가하면서 공급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실리콘투의 주요 사업 모델이고 실적 성장의 핵심인데, 중장기적으로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라고 설명했다.
실리콘투는 K-뷰티 편집숍도 직접 운영한다. ‘모이다(MOIDA)’는 전 세계에서 6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올해 안에 10개로 늘릴 예정이며, 내년까지 50개 매장을 출점할 계획이다. 모이다 런던 지점이 들어선 소호 거리는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모이다가 들어선 뒤 근처에 한식당이 늘면서 K-타운으로 거리 풍경이 바뀌고 있다. 이곳에서 쌓이는 판매 데이터는 실리콘투가 유통하는 브랜드의 재고 관리나 발주 등에 적극 활용된다. 단순 판매 역할을 하는 것을 떠나 최전방 데이터 수집 기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주가 전망은
실리콘투 주가는 올해 들어 30%가량 오르며 K-뷰티 성장 그래프와 궤를 같이했다. 안정적 실적이 매력으로 부각됐다.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지난해보다 각각 58.6%, 52.2% 오른 1조965억 원, 2094억 원이다. 내년에는 1조4000억 원대 매출과 3000억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실리콘투의 목표 주가 평균은 6만100원이다. 삼성증권은 6만3000원을 제시했다. 유럽 수요는 이제 시작됐고, 미국 내 최대 고객사 선주문이 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했다. 다른 뷰티 종목 대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높지 않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다.
실리콘투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3배 수준이다. 3개월 전 16배에서 오히려 낮아졌다. 뷰티업계의 선행 PER이 20배 이상임을 고려하면 상대적 저평가 구간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모이다 매장의 확대와 중동·유럽 시장의 성장 등에 따라 주가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차원에서는 실리콘투가 한국IR협의회가 수여하는 ‘한국IR대상’을 수여했다는 점에서 주주가치 제고 노력이 돋보인다. 그만큼 주주들과 예비 투자자에게 회사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향후 계획 등을 적극 알리는 데 노력해왔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고윤상 한국경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