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2일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막판 협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공정한 협상을 했다”고 밝힌 다음 날 협상 일정이 곧바로 잡히자 양국 입장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오는 29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 간 ‘공동성명’이 도출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김용범 정책실장도 다시 방미21일 산업부는 김 장관이 대미 후속 협상을 이어가기 위해 22일 오전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과 최지영 기획재정부 국제금융 차관보가 동행한다. 김 실장은 방미를 마치고 돌아온 지 사흘 만에, 김 장관은 귀국 후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방미길에 오르는 것이다.
정부 안팎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한국과 공정한 협상을 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러트닉 장관이 한국과의 협상 상황을 보고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수천억달러 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공정하다”며 한국을 압박하는 듯한 취지로 발언했지만 기류가 변했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 협상단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다자 외교 무대에서 ‘트럼프 관세’ 효과를 선전할 수 있고, 한국도 이번 기회를 실리를 챙기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은 17일 미국 상무부 청사에서 약 2시간 동안 면담한 뒤 만찬까지 함께 하며 양측 간 이견을 상당 부분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귀국 길에 기자들과 만나 “(타결) 시점보다는 (협상) 결과가 국익에 가장 맞는지가 우선”이라면서도 “관계 부처와 논의해 필요하면 미국에 재방문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 장관이 귀국 하루 만에 다시 미국행을 결정한 것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방식과 관련한 양국 견해차를 좁힐 수 있는 후속 제안을 마련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외환시장 담당 부처인 기재부의 최 차관보(국제경제관)가 동행하는 것은 대미 투자 과정의 한국 외환시장 안전장치와 관련됐다는 설명이다. 앞서 대미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 김 실장도 “관계 부처와 심도 있게 검토해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추가 협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MOU 체결 시점은 미뤄질 가능성협상단의 최종 목표는 양해각서(MOU) 체결이다. 이후 한국에 대한 관세 인하를 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받아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 공동성명이 선언적 의미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경우 한국과 미국은 APEC 이후에도 협상을 벌여야 하고, 자동차 관세 인하 시점도 늦춰질 수 있다. 일본은 7월 22일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지만, 양국이 MOU를 맺은 건 최종 공동성명이 나온 9월 4일이었다. 이후 연방관보 게재(9일), 상무부 통합관세율표 수정안 발표(15일), 상무부 이행고시 연방관보 게재(16일) 등을 거쳐 관세 인하가 정식 발효됐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정상 간 만남을 기점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도출해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양국은 이번 공동성명에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국방비 인상 등 안보 의제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도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처럼 10년간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약속이 담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은/김대훈/이현일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