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최강자를 찾아라…41개 사업자 전수 평가

입력 2025-11-03 13:58
수정 2025-11-03 13:59
[커버스토리] 베스트 퇴직연금 어워즈 2025





퇴직연금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노후 설계의 중심’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근로자는 퇴직연금을 통해 꾸준히 자산을 쌓고, 투자와 운용으로 미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지난해 말 431조를 넘어선 퇴직연금 적립금은 2030년 1000조 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퇴직연금은 진화를 거듭하며 단순한 파킹(parking)형 상품이나 예금성 안전자산에서 벗어나 투자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2022년 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되며, 퇴직연금 시장은 전환기를 열었다. 디폴트옵션은 별도의 운용 지시 없이도 자동으로 투자 상품에 자산이 배분되도록 하는 제도다. 여기에 지난해 10월부터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도입 이후 퇴직연금 자산의 ‘대이동’이 시작됐고, 고객들의 상품 선택지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퇴직연금 자산 대이동…새로운 선택의 기준 제시

각 사업자가 관련 상품을 내놓으며 적립금과 수익률 경쟁을 벌이고 가운데, 디폴트옵션과 함께 타깃데이트펀드(TDF)가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상장지수펀드(ETF)의 활황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 운용에서 ETF 투자가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퇴직연금이 단순한 노후 대비를 넘어 경제적 안정과 장기적 재무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제도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한경머니가 퇴직연금 정보 제공 기업 한국퇴직연금데이터(글라이드)와 함께 ‘베스트 퇴직연금 어워즈’를 새롭게 시작한다. 첫해인 올해는 국내 41개 퇴직연금 사업자 전체를 대상으로 운용 성과, 상품 포트폴리오, 만족도, 운영 관리 등 분야에서 총 13개 항목을 평가했다.

특히 ‘디폴트옵션 수익률’과 ‘서베이(사업자 만족도 조사)’가 이번 어워즈의 차별화 요소다. 디폴트옵션 제도 정착이 장기적인 퇴직연금 투자 문화의 핵심으로 판단해서다. 이를 위해 디폴트옵션 수익률에 가장 많은 가중치(20%)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온라인 설문조사 기관인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퇴직연금 가입자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업자 만족도 조사(15%)도 중요하게 봤다. 실제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사업자에 대해 평가한 결과로, 특히 ‘추천 의향’을 핵심 질문으로 물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된 ‘베스트 퇴직연금 어워즈’는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부문별 사업자의 경쟁력과 운용 성과를 비교·평가함으로써 퇴직연금 시장의 현재와 과제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
치열한 '퇴직연금 명가' 경쟁…KB국민은행 최고점

올해 평가 결과, 종합 점수 1위에 해당하는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로 KB국민은행(은행), 미래에셋증권(증권), 교보생명(보험)이 선정됐다.

먼저 은행 부문에서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는 KB국민은행이 총점 68.9점으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하나은행이 총점 63.9점으로 2위에 올랐으며 신한은행과(61.7점), 우리은행(57.5점)이 뒤를 이었다.

KB국민은행은 가장 많은 근로자가 선택한 퇴직연금 사업자에 해당한다. 지난해 9월 퇴직연금 자산관리 기준 적립금 규모 45조 원을 달성한 데 이어, 10개월 만인 지난 7월 적립금 50조 원을 돌파했다. KB국민은행은 안정적 수익률을 목표로 한 디폴트옵션과 TDF 등 자산 배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지난 8월 퇴직연금 ‘AI 투자일임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이는 등 운용 편의성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증권 부문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의 주인공은 미래에셋증권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총점 66.9점으로 14개 증권사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얻으며 ‘퇴직연금 명가’ 타이틀을 얻게 됐다. 증권 부문 2위는 삼성증권(62.6점)이 차지했으며, 한국투자증권(61.9점)과 KB증권(60.1점)도 좋은 점수를 얻었다.

미래에셋증권은 퇴직연금제도 초기부터 시장을 선도해 온 미래에셋증권은 체계적인 자산관리와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통해 퇴직연금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25년 9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34.92조 원으로 국내 증권사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이 같은 성장의 핵심 동력은 글로벌 자산 배분을 기반으로 한 상품 경쟁력으로 꼽힌다.

보험 부문 ‘베스트 퇴직연금 하우스’에 선정된 교보생명은 1976년 국내 최초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한 이후 퇴직연금 분야에서 수많은 최초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총점 61.1점으로 16개 보험사 중 종합 1위에 올랐다. 이어 삼성생명(61.6점), 삼성화재(48점), 한화생명(45점)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교보생명의 강점은 퇴직연금 서비스 경쟁력에 있다. 분기마다 퇴직연금 운영 현황을 보고하고 투자, 컴플라이언스, 임직원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한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운영보고회’, 전담 퇴직연금 컨설턴트가 고객을 직접 찾아가 투자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대일(1:1) 맞춤 컨설팅’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챗봇 상담(2020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2021년) 등을 도입하는 등 디지털 전환에도 적극적이다.


베스트 디폴트옵션
퇴직연금 경쟁력 바로미터…최적 자산 배분 '사활'

베스트 디폴트옵션은 이번 어워즈에서 가장 많은 가중치를 둔 디폴트옵션 수익률 부문의 수상자들이다.

은행권에서 최고의 디폴트옵션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업계 최초로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 구성 상품을 변경하는 등 고객이 투자 성향에 따라 어떠한 디폴트옵션을 선택하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도록 꾸준히 상품 평가와 철저한 사후관리를 병행해 오고 있다. 하나은행은 ‘연금 전문 은행’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계획이다.

증권 분야는 한국투자증권이 디폴트옵션 수익률 1위를 차지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 디폴트옵션 전용 상품인 ‘마이슈퍼(Mysuper)’ 시리즈를 내놓았다. 호주 연금 운용 노하우를 활용해 국내 투자자에 최적화된 자산 배분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인플레이션 대비 초과 추익을 추구하는 투자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보험 업권에선 삼성생명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삼성생명은 디폴트옵션 상품 선정 시 안정적 성과를 위해 위험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삼성생명의 디폴트옵션 상품 라인업은 세 차례에 걸친 감독기관 상품 심의를 거쳐 완성됐다. 실적형 톱5 상품을 최대 보유하는 등 엄선된 상품 라인업을 자랑한다.

베스트 고객만족
가입자 500명 만족도 조사...KB증권 '두각'

정성적 평가 지표로서,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사업자 만족도 조사 1위는 KB증권이 차지했다. 그 결과 KB증권이 ‘베스트 고객만족’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각 사업자에 대해 추천 의향, 수익률 만족도, 비용 가치, 투명성, 상품 라인업, 서비스 품질 등을 물었다. KB증권은 모든 부분에서 3.6점 이상의 점수를 얻으며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

KB증권은 고객 중심 연금 관리와 서비스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면과 비대면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상담 전략을 통해 고객 맞춤형 1대1 컨설팅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고객 만족도를 제고하고 있다.

베스트 투자 포트폴리오
NH투자증권, TDF·ETF 등 상품 다양성 1위

베스트 투자 포트폴리오는 상품 포트폴리오 점수가 높은 순으로 나열한 결과다. 상품의 다양성을 볼 수 있는 항목으로, 제공하는 TDF의 상품 개수와 ETF 상품 개수, 디폴트상품의 다양성을 평가했다.

그 결과 NH투자증권이 베스트 투자 포트폴리오를 가진 사업자로 평가됐다. NH투자증권에 이어 2위와 3위는 각각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차지했다.

NH투자증권은 ‘이제, 연금도 투자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퇴직연금 인공지능(AI) 투자 솔루션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상품 라인업 또한 탄탄하게 갖췄다. 860여 개에 달하는 ETF를 마련하는 한편, 국채, 회사채, 지방채 등 다양한 채권 상품도 선택지로 내놓았다. 고객 맞춤형 포트폴리오 설계를 위해 고객의 투자 성향, 은퇴 시점, 기대수익률, 위험 선호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퇴직연금 운용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베스트 운영 관리
신한은행, 제도 운영·리스크 관리 호평

베스트 운영 관리 1위의 영광은 신한은행이 거머쥐었다. NH농협은행, 한국산업은행이 그 뒤를 이었다.

신한은행은 계열사 실적을 제외한 전체 업권의 1위 사업자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에서 나온 결과라는 설명이다. 신한은행은 15년 연속 적립금 1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확정급여(DB)형, 확정기여(DC)형, IRP 등 퇴직연금 모든 제도에서 고르게 적립금 상위 순위를 차지하며 균형 잡힌 퇴직연금 사업 포트폴리오를 운영 중이다. 은행권 최다인 216개 ETF를 라인업해 고관여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에 응답하고 있다. 또한 ‘쏠(SOL) 나의 퇴직연금’ 서비스를 전면 개편해 비대면 ETF 거래 접근성을 대폭 높였다.



베스트 TDF
퇴직연금 투자의 중심 부상…수익률 상위 3개 펀드 선정

이번 ‘대한민국 퇴직연금 어워즈 2025’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산운용사들의 성적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특히 각 자산운용사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TDF를 수익률을 기준으로 들여다본 결과다.

이를 위해 빈티지(은퇴 목표 시점) 수 6개 이상인 TDF 시리즈 중, 각 시리즈의 빈티지별 누적 수익률 순위를 평균해 산출했다. TDF 평균 순위가 가장 높은 자산운용사, 이름하여 ‘베스트 TDF’ 3개사를 선정했다.

최고의 TDF를 선보인 주역들은 우리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하나자산운용이다. 각각 ‘우리다같이TDF’, ‘한국투자TDF알아서ETF포커스펀드’, ‘하나더넥스트TDF’가 높은 평균 순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12개월 데이터를 들여다본 결과이며, '하나더넥스트TDF'의 경우 출시 후 11개월의 데이터로 경쟁을 했다.

우리자산운용의 ‘우리다같이TDF’는 2024년 8월 외국계 운용사와의 포트폴리오 자문 계약을 종료하고, 독자적인 운용 체계를 구축해 리뉴얼했다. 한국형 동적 글라이드패스를 강점으로 앞세우며, 은퇴 시점과 시장 상황에 맞춰 자산 비중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TDF알아서ETF포커스펀드’는 한국인의 생애 주기에 최적화된 EMP(ETF Managed Portfolio)형 TDF다. 장기·분산·적립식 투자 원칙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장기 수익을 추구한다.

하나자산운용이 자랑하는 ‘하나더넥스트TDF’는 2024년 9월 2030~2055 6개 시리즈로 출시됐다. 단 6개월 만에 전 빈티지에서 피어그룹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타사 대비 높은 달러화 환노출도와 유연한 환 전략 수행 능력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투자자의 실질 수익률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박스] 베스트 퇴직연금 어워즈, 어떻게 평가했나

데이터·AI 기반 평가…13개 세부 항목 검증

퇴직연금 적립금이 440조 원을 넘어섰다.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불과 3년 만에 100조 원 이상이 늘었다. 퇴직연금은 이제 국민 노후 자산의 핵심이자 자본시장의 한 축이다.

그러나 적립금이 많다고 ‘좋은 연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기 수익률이나 누적 순위만으로는 가입자의 노후 안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퇴직연금의 경쟁력은 가입자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자산을 불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경머니와 한국퇴직연금데이터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평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한국퇴직연금데이터가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분석을 결합해, 퇴직연금 가입자의 연금 장기 운용 기반을 정량적으로 비교했다.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 자산관리 체계의 완성도를 본 것이다. 평가 항목은 운용 성과, 상품 포트폴리오, 고객만족도, 운영 관리의 네 가지다.

금융감독원·고용노동부 공시자료, 한경·한국퇴직연금데이터 공동 서베이, 그리고 한국퇴직연금데이터의 AI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종합해 객관적으로 점수를 산출했다. 운용 성과(30%)는 사업자의 직접 자산관리 능력을 평가했다. 디폴트옵션과 원리금보장 상품의 수익률을 함께 반영해, 단순 적립금 비교가 아닌 실제 관리 효율성을 살폈다.

퇴직연금의 성과를 적립금 규모로만 평가하는 것은 착시를 낳을 수 있다. 시장 점유율이 높더라도 운용 효율성이 떨어지면 장기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해, 이번 평가는 단순 금리 수준이 아니라 2025년 8월 기준 1년 평균금리에 표본 수를 곱한 ‘가중평균 수익률’을 사용했다. 금리 경쟁력뿐 아니라 상품 다양성까지 반영해 보다 실질적인 비교가 가능하도록 했다.

상품 포트폴리오(25%)는 장기 투자인프라의 폭과 깊이를 평가했다. TDF 시리즈 개수, ETF 제공 종목 수, 디폴트옵션의 위험등급별 구성 다양성 등이 주요 기준이다. TDF와 ETF는 글로벌 연금 시장에서 장기 성과를 이끄는 핵심 수단이다. 상품을 폭넓게 제공하고 위험등급별 구성이 균형 잡힌 사업자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객만족도(15%)는 퇴직연금의 본질이 ‘신뢰 기반의 장기 관계’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추천 의향, 수익률 만족도, 비용 대비 가치, 투명성, 상품 적합성, 서비스 품질 등 6개 항목을 5점 척도로 평가하고, 응답 표본이 적은 사업자는 경험적 베이즈(EB) 보정 방식을 적용해 편향을 최소화했다.

운영 관리(30%)는 제도 정착도와 리스크 관리 역량을 살폈다. 디폴트옵션 운용 비율, 전용 고객센터·교육자료 제공, 내부통제 및 사고 관리 체계를 평가했으며, ‘적합성 및 성과 모니터링’ 항목은 해당 사업자가 없어 모든 사업자에 0점을 부여했다.

현재 어느 사업자도 가입자의 목표와 위험 성향이 실제 운용 결과와 부합하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결과를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미비가 아니라, 퇴직연금 시장 전체가 마주한 구조적 과제다. 판매 이후의 관리 시스템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제도에 대한 신뢰도 오래가기 어렵다.

퇴직연금 시장은 이미 방향이 분명하다. 단기보다 장기, 판매보다 관리가 중요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 데이터와 AI가 그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대응하지 못한 사업자는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퇴직연금의 진짜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유정 한국퇴직연금데이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