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은 서울에 내린 축복…희망의 안식처 돼야"

입력 2025-10-21 18:20
수정 2025-10-22 00:36

“모두가 분리되고 고립되는 시대에 (한강에) 사람이 모여드는 공간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건축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은 21일 자신이 설계한 노들예술섬 착공식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도시를 가로지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강이 있고, 그 한가운데 섬이 있는 풍경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들예술섬은 2028년 준공을 목표로 기존 건축물인 ‘노들섬 복합문화시설’을 유지하면서 산책로, 공중 정원 등을 조성해 자연과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완성하는 사업이다.

헤더윅이 대표를 맡고 있는 헤더윅스튜디오는 한국의 산, 자연의 소리 등에서 영감을 받은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를 제안해 작년 5월 공모에서 최종 선정됐다. 사운드스케이프는 한국의 산을 형상화해 콘크리트 기둥 위로 공중 정원을 조성하고 공중 보행교와 연결했다. 노들섬과 이어지는 한강대교 하부에는 미디어파사드 ‘아틀리에 노들’을 설치해 한강버스(여의도~잠원)를 타고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헤더윅은 지금의 한강을 ‘젖은 사막’에 비유했다. 템스강(영국 런던), 센강(프랑스 파리) 등 주요 도시 강에 비해 규모가 상당한데도 도시가 이 공간을 “방치하고 무시하다시피 해 죽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한강은 그저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처럼 다뤄져 왔다”며 “양옆으로 큰 고속도로가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고, 그저 도시를 남과 북으로 나눌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 노들섬의 존재 자체가 “성스러운 축복”이라는 게 헤더윅의 평가다. 그는 “강은 낭만적인 자연의 한 조각이고, 시민들은 강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노들섬은 아주 귀한 장소”라고 했다. 이어 “노들예술섬은 문화도시의 진부한 공식처럼 여겨지는 오페라하우스나 도서관이 아니라 모두가 초대받는 ‘안식처’ 개념으로 설계했다”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한국 드라마에서 노들섬이 주인공들이 나쁜 일을 모의하는 곳으로 등장하던데 앞으로는 희망과 가능성, 긍정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헤더윅의 설계안은 노들섬에 7개 꽃잎 모양 구조물로 구성된 공중 정원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다. 그는 “다층적 위계 구조를 통해 ‘길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홍수 등에 따른 섬 하단부 침수 위험에 대해선 “침수를 견디는 자재와 함께 침수에 강한 식생을 가장자리에 심어 섬 자체의 회복력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가 쇼핑 등 상업 공간 조성에 매몰돼 있고, 공적 공간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게 헤더윅의 진단이다. 그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도시에서 시민 간 물리적, 정신적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며 “서로 단절된 시민을 세상과 연결하고, 혼자서도 고요히 사색하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들섬은 이 같은 공공선을 위한 최적의 공간으로, 2030 젊은 세대뿐 아니라 아이와 노인까지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는 조화로운 플랫폼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