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할당 연구 특정社 독점 논란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입력 2025-10-21 17:25
수정 2025-10-22 13:45


기업들이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으로 연간 1조원가량을 추가 부담하게 될 탄소배출권 거래제 할당계획을 특정 민간 컨설팅업체가 사실상 독점적으로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할당계획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처럼 국가가 세우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분야별 전문위원들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는 통상의 국가계획과 달리 ‘답정너’ 방식으로 마련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사설업체 손에 맡겨진 국가계획 21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후부는 ‘제4차(2026~2030년) 배출권 할당계획’ 관련 연구용역을 총 세차례 발주했는데, A컨설팅사가 세차례 연구를 모두 수행했다. 유상할당 비율 등 주요 계획은 이 컨설팅사의 연구용역 결과가 대부분 반영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A사는 지난 3차 할당계획(2021~2025년) 당시 연구 용역도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기업들에 직접적인 타격이 되는 할당계획 수립에 있어 제대로 된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계획에는 현행 10%인 유상할당 비율을 발전·비발전 부문으로 나누어 2030년까지 각각 50%, 15%로 높이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등에 따르면 이 같은 급상향으로 인해 기업들의 추가 배출권 부담액은 연간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계 부처 차관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할당위원회가 존재하지만, 할당위의 역할은 최근 기후부의 초안에 대해 한 차례 설명을 들은 게 전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거래소가, 집단에너지 기본계획은 에너지공단이 사무국 역할을 수행하는 등 국가계획 수립에는 공공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계획을 특정 사설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신뢰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윤경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는 “민간업체가 (정부가 원하는 대로) 유연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더 선호하는게 아닐까 싶다”며 "할당비율은 NDC보다 기업들에 더 직접적인 타격이 되는 만큼 균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도 미흡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부는 8월 첫 설명회 이후 지난달 1, 2차 공청회를 진행하며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한 기업 관계자는 “금요일 공청회 이후 월요일까지 추가 의견을 개진하라고 하는 등 제출 기한이 너무 촉박해 실질적인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쟁입찰 공고에 응찰하는 곳이 한곳뿐이라 불가피하다”며 "할당위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토대로 심의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할당대상 기업들이 제출한 배출권거래제 명세서 등 핵심 자료가 (영업기밀인 이유로) 이전 연구부터 참여한 A사만 접근이 가능하다 보니, 다른 연구기관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이 자료를 국책연구기관 등에도 개방해 여러 연구진이 분석·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제도 설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답정너' 방식으로 탑다운 된 국가 감축목표 이런 가운데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의 전제가 되는 '2035년 NDC' 역시 기후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NDC는 통상 기후부 산하 온실가스정보센터가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 구성한 기술작업반이 초안을 마련한다. 기술작업반은 탄소 배출량이 많거나 감축 여력이 큰 발전(전환)과 산업, 건물, 수송 등 10개 부문 주무 부처가 추천한 전문가 중에서 온실가스정보센터가 선정한다.

이후엔 기후부가 기술작업반 초안을 토대로 관계 부처 의견을 조율해 정부안을 도출하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확정안을 심의·의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후부는 내달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2018년 대비 2035년까지 달성할 감축목표(NDC)를 제출해야 한다. 2035년 NDC를 설정하기 위한 기술작업반은 작년 3월 출범해 1년가까이 101차례 토론과 회의를 거친 끝에 B·C·D·E 네 개 감축안을 마련해 기후부에 보고했다.



NDC는 기술과 정책을 각각 '적극'과 '온건'의 경우로 조합해 '2×2 매트릭스'로 시나리오를 짰다. 즉 기술·정책이 모두 적극적일 때가 B안, 둘 다 온건(미진)할 경우를 E안으로 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1년간 토론해 도출한 시나리오에서 가장 도전적인 목표라 할 수 있는 B안의 전체부문 감축률은 약 48%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선형 감축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2018년 탄소배출량과 2050년을 직선으로 연결할 경우 2035년에는 53%를 감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기후부가 "선형 감축목표에 안 맞는다"며 53%를 맞추기 위해 '탑다운' 방식으로 A안인 53%를 추가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후부는 최근 국회 업무보고와 각종 공청회 등에서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를 각각 48%, 53%, 61%, 65% 줄이는 안이 있다"며 돌연 61%, 65%라는 수치를 제시해 논란을 빚고 있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기후부 국정감사에서 "기후부가 제시한 NDC 시나리오의 근거를 제출하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전문가들이 1년간 머리를 맞대서 도출한 B안도 산업계에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는데, 기후부의 요청으로 겨우 맞춰낸 A안이 최근 공청회 등에서 '안일한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