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운영규칙을 시장참여자 중심의 ‘자율적 규범(자치규칙)’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재생에너지 확대와 민간 발전사 참여가 늘어난 상황에서도 여전히 2001년의 ‘중앙통제형 전력시장’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혼란과 불공정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력시장운영규칙은 한국전력거래소가 만든 일종의 '전기 거래 룰북'이다.
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력시장 선진화를 위한 법적기반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의 전력시장운영규칙은 20년 전 구조에 머물러 시장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단순히 전력시장운영규칙의 내용을 고치는 것을 넘어서 그 법적 지위(성격) 자체를 다시 정의하자는 주장들이 잇따랐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역임한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현행 제도가 만들어졌던 2001년엔 한국전력이 전기를 독점 구매하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민간발전사들이 많이 늘고 재생에너지도 급증했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발전소가 정부가 정한 기준비용으로만 거래하는 ‘변동비 반영시장(CBP)’ 구조를 유지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CBP란 발전사가 연료비 등 변동비를 제출하면, 정부가 그 비용을 기준으로 전기값을 정해 정산하는 구조다. 손 교수는 “이 구조에선 재생에너지처럼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전원의 특성을 반영할 수 없고, 신속하게 전력을 조절할 수 있는 LNG나 석탄발전의 ‘유연성’ 가치를 보상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민간 석탄발전사는 한전 자회사인 발전 공기업들처럼 정산조정계수를 적용받으면서도 손실 보전은 못 받고 있다”며 “같은 규칙을 적용하면서 보상 체계가 달라 불공정하다”고 강조했다.
전력시장운영규칙을 지금처럼 정부 규제(법규명령)에 가까운 통제형 구조로 둬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옥선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력시장운영규칙은 시장참가자들이 따라야 하는 필수 규칙이지만, 법적으로는 이게 법인지, 단체 내부규칙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력거래소가 해당 규칙을 만들지만, 정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생긴다”며 “즉 자율성과 정부 규제가 섞여 있는 독특한 구조인데, 법적 성격이 불분명해질수록 시장참여자에게 불이익이 생겨도 법원에서 바로잡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이 규칙을 법규명령(정부가 만든 법적 효력 있는 규정)으로 볼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 내부규칙으로 볼지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현행 제도가 헌법이 정한 ‘입법권 위임의 한계’를 넘지 않도록 법적 틀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패널토론에서도 “법과 제도를 함께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전력시장운영규칙이 정부의 행정권과 시장의 자율 사이에서 균형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전우영 서울과기대 교수는 “지금 시장은 비용만 보고 운영된다”며 “앞으로는 전력 공급의 신뢰도와 계통 안정성, 즉 ‘전기를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능력’을 중심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