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린 <에이리언>(1979)이 나온 지 36년, 이 시리즈는 속편과 스핀오프와 드라마 등을 통해 장수하고 있다. H.R. 기거가 디자인한 획기적인 크리처의 존재, 리들리 스콧이 완성한 인간과 외계 종의 대립 서사, 그리고 이 외계 종은 어디서 왔을까, 에서 파생된 창조론까지, 매번 같은 서사가 반복되는 듯하면서도 약간의 변주로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에이리언: 어스>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하는 8부작 드라마로 이전 시리즈와 비교해 서사의 전개 방식이 많이 달라진 양상이다. 100년 후의 미국에서는 정부 개념 대신 ‘더 파이브‘로 불리는 다섯 개의 초거대 기업이 연합해 일종의 공동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프로디지‘는 그중 한 곳으로 이미 여섯 살 나이에 로봇을 만들었던 카발리어(새뮤엘 블렌킨)가 CEO로 군림하고 있다.
본토에 프로디지 시티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밀림 같은 곳에 ‘네버랜드’를 세우고 ‘피터 팬’처럼 살고 있다.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 팬처럼 지금의 지위를 누리고 싶은데 그 목적으로 ‘잃어버린 아이들‘도 만들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이들의 정신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식해 합성 인간을 만들어 웬디(시드니 챈들러)를 비롯하여 실제 피터 팬 동화에 나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에이리언과 피터 팬이 뭔 상관? 의아해할 법도 하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이종교배에 있는데 1부 시작부터 합성 인간과 사이보그 등 극 중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인간과 반(半) 인간과 인간 외의 존재가 공존한다고 알린다. 이를 주도한 곳이 프로디지와 웨이랜드 유타니와 같은 더 파이브이고 프로디지는 합성 인간을 시장에 선보여 영생에 관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겨 돈을 벌 계획이다.
거대 기업의 CEO를 넘어 신이 되고자 하는 카발리어 같은 이들은 그래서 창조주의 지위를 넘볼 뿐 아니라 이미 인간의 모습을 한 새로운 종(種)을 만들어 그들의 주인 행세를 한다. 그건 경쟁사인 웨이랜드 유타니도 마찬가지여서 제노모프로 불리는 외계의 무시무시한 괴물을 지구로 들여와 실험할 계획을 세운다. 이 시리즈의 제목이 <에이리언: 어스>인 이유다.
문제는 제노모프를 비롯한 살상 능력을 갖춘 외계 종을 실은 우주선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구에, 카발리어가 소유한 프로디지 시티에 불시착한 것. 웨이랜드 유타니에서는 거액의 배상금을 주고 외계 종을 되돌려 받으려 하지만, 카발리어는 그럴 생각이 없다. 이들의 습성을 파악해 또 다른 종을 만들거나 이종 교배하여 시장의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으로 제작할 생각이다.
<에이리언: 어스>도 일종의 이종교배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장르, 기념비적인 크리처물에 클래식이 된 동화가 결합했다. 둘이 맺은 관계의 성공 여부를 떠나 프랜차이즈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한 시도라는 생각이다. 이 시리즈가 내장한 기본 설정, 인간의 몸을 숙주로 태어나는 제노모프, 페이스 허거를 비롯하여 성기를 닮은 크리처의 형태 등 성적 은유가 향하는 바가 ‘창조’에 있어서다.
다만 이 생명체의 탄생은 신의 영역에서 이뤄져야 함에도 인간이 침범한다는 점에서 태양 가까이 접근했다 날개가 불에 타 추락하고만 이카로스의 신화와 같은 파국을 예고한다. 이른 나이에 조만 장자가 되어 합성 인간을 창조하고 신인 양 군림하는 카발리어는 신체는 어른이되 정신은 그에 걸맞게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자다. 그에게 주어진 지위는 어린아이가 든 총만큼이나 위험하다.
특정인이 모델은 아니어도 카발리어가 떠올리게 하는 이들을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다. SNS, AI 등의 분야에서 미래에나 가능할법한 현실을 현재로 앞당겨 이십 대 나이에 주목받는 인사가 된 이들. 세상의 카발리어 덕에 세계는 좁아지고, 첨단의 이기 덕에 편리한 생활을 누리지만,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고, 기후 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으며 지구는 황폐하고 인간미 없는 곳으로 무너지고 있다.
‘어스’를 부제로 평가 절하(?)한 국내 제목과 다르게 원제 ‘ALIEN EARTH’는 두 단어 사이에 따로 구별을 두고 있지 않다. 지구를 파괴하고 종말로 이끄는 존재는 무엇인가, 여덟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을 빌자면,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이다. 제노모프를 비롯한 외계의 종들이 인간을 공격하긴 해도 이들을 지구로 끌어들인 건 프로디지와 웨이랜드 유타니와 같은 거대 기업이다.
기업의 이득에 도움이 된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생명조차 상품 개발을 위한 실험 도구나 홍보용으로 격하하고 그럼으로써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는 이들이야말로 <에이리언: 어스>는 제노모프보다 더 위협적인 괴물이 아니냐며 이 장르에서 익숙해진 경종을 울린다. 미성숙한 자아로 신의 지위를 넘보다 제 꾀에 넘어간 ‘지구의 괴물 Alien Earth‘들.
드라마는 이들의 존재를 감옥에 가둬둠으로써 끝을 내지만,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을 알린다. 카발리어와 그에 충성한 사이보그 세력을 전복하고 네버랜드의 권력을 잡은 이는 아이의 정신을 청년의 신체에 이식한 합성 인간 웬디다. 또 다른 버전의 카발리어는 제노모프를 자신의 수족으로 거느리며 또 다른 이카로스의 신화를 꿈꾼다. 지구에서의 괴물의 계보는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