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전력 급한데…'송전기술' 명맥 끊겼다

입력 2025-10-20 17:48
수정 2025-10-21 07:53
2020년 일본의 히타치는 스위스·스웨덴 합작사인 ABB로부터 전력 그리드 사업 부문을 약 110억달러에 인수했다. 히타치에너지로 사명이 바뀐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은 초고압직류송전(HVDC) 설비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교류(AC) 전력을 고전압 직류(DC)로 바꿔 먼 거리까지 효율적으로 보내는 송전 기술이다.

정부도 HVDC에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해 2030년 완료를 목표로 추진 중인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의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중요성에도 HVDC 연구 생태계는 붕괴 직전이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등 주요 대학에 관련 기술을 가르칠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다. 고려대는 HVDC의 중요성을 절감해 지난해부터 세 차례 교원(교수)을 모집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던 ‘레거시(legacy)’ 공학 홀대가 K제조업 경쟁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주요 대학에 따르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는 정현교 교수가 2020년 퇴임한 이후 학생을 가르칠 교수가 없다. 고려대 역시 1990년대에 퇴임한 천희영 교수를 마지막으로 HVDC 기기 설계 연구실을 폐쇄했다.

이규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전력에너지 연구자 대부분이 전기차용 모터 기술이나 한국전력 등의 수요가 많은 전력 계통 쪽으로 간다”며 “HVDC 기술이 히타치, 지멘스(독일), 제너럴일렉트릭(GE·미국) 등 3사가 세계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터라 고용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연구자가 끊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실 생태계가 붕괴하면서 국내 변압기 제조사의 국산화 수준은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초급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 기술로 개발한 HVDC 변압 설비 기술 수준은 500메가와트(㎿)·120킬로볼트(㎸)급이다. 각각 LS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이 개발했다. 하지만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 필요한 기술 규격은 2기가와트(GW)·525㎸급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완성하기 위해선 히타치에너지 등 해외 기업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HD현대일렉트릭은 히타치에너지와 기술협력을 통해 HVDC 기술 확보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