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웨이퍼에 나노미터(㎚·1㎚=10억분의 1m) 단위의 회로를 새기는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은 첨단 반도체 제조의 핵심 기술이다.
노광 공정에는 빛이 통과한 영역의 성질을 변하게 하는 특수 물질 포토레지스트(PR)가 꼭 필요하다. PR은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와 함께 2019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카드로 꺼내 든 반도체산업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국내 중견 전자·화학기업 켐트로닉스는 최근 EUV 공정에 쓰이는 PR을 제조하는 핵심 소재인 ‘프로필렌글리콜메틸에테르아세트산’(PGMEA) 양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순도 99.999%를 의미하는 ‘5N’급 제품으로 독일 다우, 네덜란드 라이온델바젤을 비롯한 몇몇 글로벌 화학 기업만 갖고 있던 기술이다.
김응수 켐트로닉스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력 사업인 디스플레이 식각 소재와 무선충전 부품 등 기존의 성과를 넘어 초정밀·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대체 불가’ 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창업주 김보균 회장에 이어 회사를 이끄는 2세 경영인인 김 대표는 43년 역사를 가진 켐트로닉스의 ‘변신’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뭔가요.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EUV 공정 도입이 확대되면서 초고순도 PGMEA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2022년 기술을 확보했죠. 1년 이상 품질 평가를 받아 고객사로부터 최종 공급 승인을 받았고, 양산 공정 안정화를 거쳐 지난 9월 여러 글로벌 업체에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올초엔 제이쓰리를 인수해 폐기된 웨이퍼를 새 제품과 대등한 품질로 재탄생시키는 재생 웨이퍼 사업에 진출했고, 플라스틱 기판을 대체할 유리기판 기술도 개발 중입니다.”
▷반도체 소재는 진입 장벽이 높은데요.
“반도체 기업은 소재를 바꾸는 데 극도로 신중하죠.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우리 제품을 써주진 않습니다. 차별화된 제품을 내놔야만 하죠. 우리 PGMEA는 공정 결함을 부르는 금속성 불순물을 경쟁사의 10분의 1로, 독성물질인 베타-아이소머 함량을 해외 제품의 100분의 1로 낮춰 성능과 친환경성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연간 2만5000t 규모 생산설비를 구축했는데, 국내 수요(4만t)의 절반을 넘죠. 해외 수요를 지켜보면서 증설에 나설 계획입니다.”
▷유리기판은 어떻게 개발했습니까.
“유리기판은 AI 반도체 시대에 데이터 처리량이 늘며 따라붙는 발열 문제를 해결해줄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습니다. 켐트로닉스는 유리기판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데이터가 오갈 고속도로를 뚫는 ‘유리관통전극’(TGV) 가공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죠. 식각과 레이저 등 핵심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고, 인허가가 까다로운 불산 설비도 확보해 강점이 있습니다.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파일럿 라인을 구축했습니다.”
▷기존 사업들이 탄탄한데 왜 변신에 나섰습니까.
“켐트로닉스는 특정 물질을 녹이는 화학물질인 ‘용제’ 사업으로 시작해 터치집적회로, 디스플레이 식각, 무선충전, 자율주행 통신 모듈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백화점식’이란 시각도 있지만 국내 디스플레이 식각 분야 1위 기업이 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하지만 우리의 성장 방식이 영업으로 물량을 떼 와서 싸게 많이 만드는 데 머물러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켐트로닉스가 연 매출 5000억원대를 넘어 1조원 기업이 되려면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변신을 위해 얼마나 투자했나요.
“주력 사업인 첨단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식각 라인 구축에 지난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여기서 만든 제품은 삼성디스플레이를 통해 글로벌 업체의 고급 태블릿PC에 들어갑니다. 또 반도체 사업 진출을 위해 지금까지 1000억원을 투자했죠. 연 매출이 5000억원대, 영업이익이 300억~400억원대인 회사에서 2000억원 투자는 변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건 겁니다.”
▷어떤 기업이 되고 싶나요.
“반도체·디스플레이 영역에서 대체할 수 없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저 국산화에만 그쳐선 3~4곳 중 하나밖에 안 됩니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죠. 고객사가 가진 병목을 우리만의 기술로 뚫고, 이를 통해 고객사와 ‘윈윈’하는 것이 한국 소부장이 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