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같은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최근 만난 한 뷰티 브랜드 창업자가 한 말이다.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에 샤넬·루이비통·불가리 등을 창업했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 심사에서 탈락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핸드메이드로 여행가방을 만들고 싶습니다."
"시장규모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파리의 부르주아 몇 명 정도요."
"인공지능(AI) 기술은 쓰이나요?"
"아니요. 장인이 손으로 만듭니다."
"죄송합니다. 투자 대비 수익률(ROI)이 안 나올 거 같네요."
이렇게 거절당하며 면접은 끝나지 않을까.
19세기 초 루이비통은 프랑스의 가난한 시골 소년이었다. 13살에 새엄마가 들어오면서 집에서 나왔다.
이후 노숙 생활을 하며 잡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파리엔 걸어서 2년 만에 도착했다. 귀족들의 여행 짐을 싸는 일을 하면서 실력과 감각을 인정받아 고생 끝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다. 운도 없어 곧 전쟁이 터지고 공방이 불타면서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그는 맨손으로 다시 사업을 일궜다. 큰 전쟁에 따른 세 번의 사업 실패, 한 번의 파산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자기 손을 믿었다.
여행 캐리어 브랜드로 유명한 리모와의 창립자 파울 모르스체크도 비슷한 인생 여정을 보였다. 공장이 화재로 전소했을 때 그는 불탄 잿더미 속에서 알루미늄만 손상 없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요즘 세상 같으면 사업을 정리하고 업종을 바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잿더미 속에서 브랜드의 미래를 봤다. 불 속에서 태어난 금속 트렁크는 극한의 온도와 충격에도 끄떡없는 여행 캐리어의 상징이 되었다. 125년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내구성과 혁신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로마를 상징하는 보석 브랜드 불가리의 창립자 소티리오도 노점에서 장사를 시작해 힘들게 오픈 한 보석 상점을 한순간의 화재로 다 잃었다. 모두 불타고 재만 남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은세공을 다시 시작했다. 불가리는 잿더미 속에서 다시 피어나 로마의 대표적인 주얼리 브랜드가 되었다. 140년 넘게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영원한 도시의 빛을 품은 보석'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이 세 명의 창업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견디는 시간이 허락됐다는 점이다.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시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 그 느림이 허락되던 시대였다.
지금은 빠름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효율이 곧 정의고, 리스크는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느리게 굳어가는 장인의 손놀림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알고리즘이 더 존중받는다. 요즘 세대는 "샤넬 같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그들이 샤넬처럼 세 번 무너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현대의 창업자들은 성공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지만, 실패의 시나리오는 상정하지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의 자산은 완벽함이 아니다. 잿더미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 그게 바로 가장 단단한 명품의 실상이다. 그들은 위기 때마다 브랜드의 본질로 돌아갔다. 제품보다 철학, 트렌드보다 태도였다. 팬데믹을 넘고 전쟁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럭셔리 브랜드들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해 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백 년 넘게 위기를 겪으며 면역력을 길러왔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철학을 다듬고, 가치의 뿌리를 더 깊이 박았다.
화려함은 나중의 보상이다. 럭셔리는 '무너지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윤경 럭셔리인사이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