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을 거론하며 “미국으로 수천억달러, 심지어 조 단위 달러 자금이 들어오는 것이 공정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 장관급 협상팀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관세 협상을 한 지 하루 만이다. 한국만 콕 집어 말한 건 아니지만 한국 측과 관세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한국을 압박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던 중 취재진에게 무역 협상에 관한 질문을 받자 “우리는 중국에 아주 심하게 이용당했다”고 답했다. 이어 “여러분이 알아야 할 점은 우리가 중국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수십 년간 일방통행이었고 그들은 미국 덕분에 부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며 “그것은 EU도 포함되고 일본과 한국도 포함된다. 이들 나라에서 우리가 바라는 점은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공정하게’라는 것은 미국으로 수천억달러, 심지어 조 단위 달러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가 안보는 관세 덕분에 굳건하다”며 “관세가 없었다면 국가 안보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EU 등 동맹에 상호관세를 부과한 덕분에 미국이 이익을 보고 있다는 논리를 고수한 것이다. 일본과 EU는 미국이 매긴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각각 6500억달러, 5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투자액 중 현금 비중 등을 두고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주목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전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워싱턴DC에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나 2시간가량 관세 협상을 벌인 뒤 나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액 3500억달러는 ‘선불’(up front)로 내야 한다고 요구해왔는데 이날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장관급 협상팀이 러트닉 장관과 만났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