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한·미 장관급 관세 협상에선 당초 기대와 달리 협상 타결의 실마리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급 단계에서도 양측의 입장차는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착상태에 빠진 미·중 협상과 미국의 내부 정치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협상 전망을 예상하기 쉽지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주 방미했던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 한국의 협상팀도 추가 협상 일정을 잡지 않고 귀국했다. 정부 안팎에선 큰 틀에선 양국이 일정 부분 이견을 좁혔으나 아직은 세부 조율이 필요한 단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은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목표로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장관급 담판에도 실마리 못 찾아19일 정부에 따르면 김 정책실장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 한국 측 협상팀은 지난 16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미국 측 협상단과 회동 이후 이날 오후 귀국했다. 주말 사이에 연쇄 협상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추가 협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 현지에 남았지만, 추가 협상을 할지 여부는 미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18일(현지시간) 조지아주의 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 등을 방문한 후 한국시간으로 20일 오후 귀국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은 주말 협상 전 “10일 이내 결론이 날 것”(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가장 진지하고 건설적인 분위기에서 협상”(김용범 실장) 등 양국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한국 협상단은 이번 방미에서 3500억 달러(약480조원) 규모 대미 투자펀드의 구성안 등에 관해 한국 측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지만, 현금 비중 등 핵심 사항에서는 여전히 평행선을 긋고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 협상 직후인 17일에도 한국 등을 거론하며 “미국이 이들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받는 게 공정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협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아직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이달 말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도출이번 협상 결과는 오는 29일 경주에서 열리는 양국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직결된다. 현재 한·미 통상 수장 간 추가 협상 일정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화상(비대면) 협상 등 다양한 협상 방식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건부 합의나 공동성명 수준의 합의를 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국보다 먼저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의 경우에도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형태의 원칙적 합의안을 우선 발표하고, 이후 세부적인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 서명과 자동차 품목 관세 인하 등 행정명령 발표 등이 이뤄졌다.
허정 한국국제통상학회장(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은 “미국이 외환시장 안정 방안에 ‘이해한다’며 양보 의사를 내비친 것에 화답하듯 한국도 현금 비중 등에서 일정 부분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익 배분 등 숫자에 매몰되기보다는 일본·유럽처럼 한국 기업들도 미국 내 직접투자와 현지 법인 설립을 늘려 재투자가 다시 한국 기업의 이익으로 환류되도록 하는 병행 전략을 세우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달 10일 제2차 ‘관세 휴전’ 만료를 앞두고 최근 또다시 격화된 미·중 갈등으로 한국 상황이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국 내에서도 한국과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로버츠 선임연구원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불과 5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신규 선박 발주 시장에서 중국과 한국은 각각 37%의 점유율을 보였지만, 지난해엔 중국이 75%에 이른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동맹국과의 심층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