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000, 꿈 아니다"…증시로 쏠리는 머니

입력 2025-10-16 16:11
수정 2025-10-16 16:19

“11년간 증권업계에서 일했지만 최근보다 좋은 국내 증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없다.” (강자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국내주식운용본부장)

코스피지수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지난 6월20일 3000선을 넘긴 지 세달 여만에 3300선을 돌파한 이후 짧게는 1거래일, 길게는 4거래일 만에 거침없이 100포인트씩 오르고 있다. 미국의 양적 긴축(QT·대차대조표 축소) 중단과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시가총액 최상위주인 반도체 기업의 약진, 목전에 온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과 강력한 부동산 시장 규제에 따른 머니무브 기대 등이 맞물리며 연일 축포를 터뜨리고 있다. 증권가에선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돌파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전망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파죽지세 코스피올해 코스피지수는 56.2% 급등했다. 역대 코스피지수의 연간 상승률 5위다. 1~4위는 각각 1987년(91.6%), 1999년(82.8%), 1988년(72.8%), 1986년(66.9%) 등으로 모두 2000년 이전 기록이다. 2000년 이후 최대 연간 상승폭인 셈이다.

대선 이후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에 기대 오르던 코스피지수의 상승 속도가 최근들어 가팔라진 건 미국의 통화 완화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글로벌 자산 시장에 돈이 풀리는 ‘유동성 랠리’를 기대하는 투자자금이 증시로 쏠리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지난 14일 향후 수개월 내 Fed의 보유자산을 줄이는 양적 긴축을 종료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양적 긴축은 Fed가 보유 중인 채권을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하지 않는 식으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이다. 10월 기준금리 인하도 시사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QT를 끝내면 시장 금리가 진정되며 증시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 트레이드'로 불리는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여전히 강한 분위기다.

만개한 인공지능(AI) 시장도 국내 증시엔 연일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각각 %, % 올랐다. AI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뿐 아니라 HBM을 생산하느라 생산 라인이 부족해진 범용 D램 가격까지 크게 뛰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는 이날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 추정치를 약 94조원으로 상향했다.국내 증권사 컨센서스(추정치 평균·약 60조원)의 약 1.5배다.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도 최근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주가를 각각 13만원, 10만9000원으로 대폭 올렸다.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약 80조원(컨센서스 약 53조원)으로 상향하며 “현 주가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SK하이닉스의 HBM 리더십을 반영하지 않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난항을 겪어온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타결 막바지에 이르자 국내 증시 상승세에 더욱 탄력이 붙은 모양새다.

강력한 부동산 시장 규제에 따른 머니무브 기대도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는 15억원 이상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4억원으로 강화하는 등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해 부동산 시장으로의 과도한 유동성 유입 차단에 나섰다. 정부가 추진 중인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역시 증시를 올린 요인이다. 지난 15일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기존 35%에서 25%로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코스피 4000, 가능한 현실”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내놓는 전망 수준이 가파르게 오르는 코스피지수를 따라가지 못하며 당황하는 모습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1일 4분기 코스피지수 밴드로 3200~3700선을 제시했지만 이날 코스피지수는 3700선을 뚫었다. KB증권과 대신증권은 10월 코스피지수 예상 범위로 각각 3270~3690, 3159~3550을 제시했다. 유안타증권도 4분기 예상범위를 3350~3750으로 잡았다.

증권가에선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돌파하는 것도 허황된 꿈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강자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국내주식운용 본부장은 “삼성전자의 이익 추정치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주가 상승률이 과도한 건 아니다”라며 “반도체 주가가 당분간 강세를 띄고 3분기 호실적을 발표한 조선·방산·원전 등이 추가로 반등하면 코스피지수는 4000선을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당분간 미국보다 한국 증시가 더 센 상승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계 IB 모건스탠리 역시 강세장이 지속될 경우 최고 4200까지 올라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완화됐던 미·중 무역 긴장이 재점화될 가능성을 모간스탠리 글로벌 팀이 전망하는 만큼 주가 하락이 나올 경우 매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까지 치솟지 않는 한 강세장 분위기가 뒤집힐 확률은 낮다”며 “지금은 ‘코스피 4000 시대’로 향하는 길 중턱에 서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맹진규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