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줘야 한다는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에서 SK그룹으로 흘러간 300억원의 자금은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뇌물”이라며 노 관장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한 증거가 될 순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재산 분할 청구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지난해 5월 2심 판결이 나온 뒤 1년 5개월 만의 대법원 판단이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액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모두 1심에서 인정된 금액(665억원, 1억원)보다 20배가량 늘었다. 특히 재산분할액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노태우 자금, 불법원인급여…반환 청구 못해”2심 판단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SK그룹이 신규 사업 진출 등으로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태우 일가의 기여가 있었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법원은 여기에 잘못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의 부친 노태우가 1991년경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판시했다.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 청구에서 불법원인급여의 반환 청구를 배제한 민법 746조의 입법 취지가 고려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 조항은 불법적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피고가 노태우가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게 아니라 재산 분할에서의 피고의 기여로 주장한다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며 “노태우의 행위가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 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금전 지원 부분을 재산 분할 비율 산정에 반영한 원심 판단도 잘못됐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전체 분할 대상 재산에서 최 회장 명의 SK㈜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원심의 재산 분할 비율 산정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친인척에 증여한 재산, 분할 대상 아냐”최 회장이 친인척에게 증여의 방식으로 처분한 재산도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해선 안 된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최 회장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에게 SK그룹 계열사 주식을 증여하고 증여세를 대납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처분한 바 있다.
재판부는 “혼인 관계가 파탄된 이후 부부 일방이 공동 생활이나 공동 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 없이 적극 재산을 처분했다면 해당 자산을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그대로 보유한 것으로 봐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다”면서도 “그 처분이 공동 생활이나 공동 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의 재산 처분은 원심이 인정한 혼인 관계 파탄일인 2019년 12월 4일 이전에 이뤄졌고, 최 회장이 SK그룹 경영자로서 안정적인 기업 경영권 또는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행한 것으로서 SK 주식을 비롯한 부부 공동 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가를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친인척에 대한 주식 증여 등은 최 회장이 SK그룹 경영권을 원만히 승계·확보할 수 있도록 양보해 준 최재원 및 사촌들에 대한 보상을 위한 것이므로 부부 공동 재산 형성·유지와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 외 주식 증여나 급여 등 반납도 SK그룹 경영자로서 최 회장의 원활한 경제 활동을 위한 것이므로 부부 공동 재산 형성·유지와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해당 쟁점과 관련해 대법원이 법리를 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대법원은 위자료 액수에 대한 2심 판결은 최 회장 측 상고를 기각해 20억원으로 확정됐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