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경영권 리스크' 덜었다…'1.4조 재산 분할' 파기환송 [분석+]

입력 2025-10-16 11:09
수정 2025-10-16 13:05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1조4000억원에 육박하는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앞선 항소심 판결 중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목만 확정했다. 천문학적 재산분할금을 다시 다투게 된 만큼 일각에서 제기됐던 '경영권 리스크' 부담도 일단 덜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과)는 이날 오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원심 판결의 경우 최 회장 측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인정한 바와 같이 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해 함구함으로써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노태우의 금전 지원을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한 것은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면서 원심 판결 중 재산분할에 관한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앞서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계산한 다음 이 가운데 35%를 재산분할금으로 정한 것이다.

이후 최 회장의 ㈜SK(옛 대한텔레콤) 지분이 부친으로부터 받은 '특유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이 지분을 상속·증여받은 특유재산으로 볼 경우 부부 공동 재산이 아닌 만큼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항소심에서 재산분할금이 대폭 상향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이 인정된 결과였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선대회장 측으로 유입되면서 당시 선경(SK)그룹이 성장하는 종잣돈이 됐다는 판단했다.

때문에 업계 안팎에선 SK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을 마련하려면 주식 상당수를 처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이 재산분할 부분을 파기환송한 만큼 일단은 지배구조 리스크 부담을 덜어냈다.

최 회장은 △㈜SK 주식 1297만5472주(17.90%) △SK디스커버리 보통주 2만1816주(0.12%)·우선주 4만2200주(3.22%) △SK케미칼 우선주 6만7971주(3.21%) △SK텔레콤 303주(0.00%) △SK스퀘어 196주(0.00%) △SK실트론 29.4% 등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최 회장이 ㈜SK 지분을 통해 그룹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데다 다른 재벌총수들과 비교하면 지분율이 높지 않아 주식 처분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나왔었다.

앞서 최 회장은 2015년 언론을 통해 "노 관장과 10년 넘게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지냈다"고 털어놓으면서 함께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협의이혼을 위한 조정을 신청했으나 2018년 2월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식 소송에 돌입했다. 노 관장은 이듬해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면서 맞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혼인관계 파탄 이후 부부 일방이 공동생활이나 공동재산 형성·유지와 관련 없이 적극재산을 처분했다면 분할대상 재산에 포함할 수 있다"면서도 "그 처분이 부부 공동생활이나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처음 제시하기도 했다.

이어 "최 회장이 친인척이나 사회적 기업들에 주식을 증여하거나 자신의 급여를 반납한 것은 경영권을 원만히 확보하기 위한 것이거나 경영자로서 원활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최 회장이 이미 증여 등으로 처분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이나 돈을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부연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