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5일 12:0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촉발된 교역의 증가는 금융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가져왔다. 이후 21세기 세계화 흐름 속에서 금융은 단순한 거래 지원을 넘어 국가 간 자금 흐름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터넷 등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금융은 생활 속에 밀접하게 자리잡았다. 이처럼 기술은 금융산업 도약의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이제 금융산업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예고하는 거대한 기술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발전한 인공지능(AI)은 호기심의 단계를 지나 그 자체로 새로운 현상이자 생활의 중요 도구가 됐다.
AI는 21세기 초 잠시 생산성 혁명을 주도했던 로봇프로세스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RPA)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정형화된 업무의 반복 수행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인간의 판단을 지원하는 추론능력을 보유한 이 새로운 기술은 기존 산업의 질서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 금융산업의 ‘디지털 대전환’오랫동안 금융산업은 대규모 인력과 점포, 거대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었다. 수십 년간 축적된 관행적 절차가 업게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 산업의 주요 특징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이런 장벽을 허물며 기술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현실로 만들었다.
금융업계의 오랜 관행과 고유한 업무 방식이 하나둘씩 프로그램으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과거 금융상품과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제공하기 어려웠던 투자 자문과 상담 서비스도 이제 챗봇과 디지털 어시스턴트의 영역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금융 서비스의 마지막 보루였던 '인간의 감성' 영역조차 머지않아 AI가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금융은 더 이상 자본집약적 규제 산업이 아닌 기술주도형 복합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가 기존 카드사를 대신해 고객에게 물품 구입을 위한 신용을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제휴 업체의 대출 플랫폼으로 고객을 안내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 AI가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그렇다면 금융산업은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인가? 다양한 종의 결합을 통해 진화한 인간의 역사처럼, 기술이 촉발하고 AI가 가속화하는 금융산업의 해체는 새로운 금융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편리한 금융 서비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AI는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AI 기반 챗봇과 24시간 운영되는 디지털 플랫폼은 기존의 시공간적 제약을 완전히 해소했다. 고객들은 영업 시간이나 지점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물리적 접근이 어려웠던 지역 고객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더욱 의미 있는 변화는 포용적 금융의 실현이다. 전통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에서 소외됐던 계층들이 AI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있다. AI는 단순한 신용점수나 담보 중심 평가를 넘어 소셜미디어 활동, 전자상거래 이용 패턴, 모바일 사용 데이터 등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다. 이를 통해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개인의 신용도와 상환 능력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금융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AI는 금융 혁신과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기존 금융기관들이 오랜 시간 개발해온 상품과 서비스가 AI 기술을 통해 더욱 정교하고 개인화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동시에 핀테크·빅테크 기업이 AI를 활용한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전체 금융 생태계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역시 AI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다. AI는 시장 동향, 고객 행동 패턴, 거시경제 지표 등 수많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린다. 이는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전반적인 경영 효율성 제고에도 크게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규제 대응과 투명성 강화 측면에서 AI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AI 시스템은 모든 거래 기록과 데이터 흐름, 의사결정 과정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자동화된 기록 시스템은 금융기관 운영의 투명성을 크게 높여 고객과 규제기관 모두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 AI 시대 금융기업의 생존전략AI가 펼쳐낼 금융의 새로운 미래에서는 미리 준비한 기업만이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준비는 운영 효율성과 자동화 등 기업 경영의 단편적 부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산업 내 개별 회사의 역량과 위치를 철저히 검토하고, 어느 영역에 집중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자본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모든 금융사가 자체 설비와 인력만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현실적인 전략이 아닐 수 있다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미래의 생존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살펴볼 핵심 사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핵심 역량의 명확한 식별이 필요하다. 상품 개발 및 고객제안 능력, 운영 효율성, 또는 특정 도메인에서의 압도적 지위 등 금융사는 자신만의 핵심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극대화하는 미래운영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고객 확보 전략의 전면적 재검토가 시급하다. 빅테크 등 기술기업의 본격적인 진출로 금융 생태계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경쟁적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이 절실하다. 기술 기업과의 적극적인 제휴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나, 경쟁력 있는 고객 경험을 독자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기술력 확보 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AI 및 디지털 전환(AX/DX)이 생존의 필수조건이 됐다. 금융사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점차 유사해지면서 수익 마진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이에 따라 운영 효율성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AI 및 디지털 기반의 효율적인 운영 프로세스 구축은 이제 선택 사항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 표면적 혁신 넘어…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해야금융산업은 기술 혁신과 규제 변화, 고객 기대의 고도화 등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AI의 급격한 발전은 금융기관들에 단순한 기술 도입 차원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 전체와 조직 운영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재설계를 요구한다.
이제 금융기관들은 고객 유치와 상품 판매 중심의 전통적 역할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대신 데이터 기반 금융 인프라의 핵심 제공자이자, 알고리즘 친화적인 생태계의 핵심 참여자로서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고객 접점 방식의 혁신, 내부 운영 체계의 디지털화, 리스크 관리 패러다임의 변화, 규제 대응 체계의 고도화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기준과 전략을 요구한다.
AI는 금융 서비스의 효율성과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산업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기술 중심의 표면적 혁신을 넘어서 신뢰와 책임이라는 금융업의 본질적 가치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가오는 AI 시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를 각 비즈니스 전략에 적절히 통합하려는 노력은 금융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고객 중심의 서비스 혁신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깊이 있는 성찰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