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한시적으로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가운데, 대만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대만인 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15일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요즘 한국에서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심한데 이런 배지를 달아야 할까"라는 글과 함께 "대만 사람이에요"라고 한글로 적힌 배지 사진이 다수 올라왔다. 배지에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새겨져 있다.
대만 누리꾼들은 "택시 운전사들은 관광객 자주 태우니 대만인과 중국인 차이를 알 수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정말 알 수 없다. 일부 가게 주인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모두 똑같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한국에 방문 시, 이 배지를 달았는데, 점원이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걸 느꼈다. 반드시 가지고 다녀라"고 조언했다. 대만과 중국은 각각 번체자와 간체자를 사용하는 등 언어 차이가 있지만, 표준어 발음이 비슷해 한국인에게는 구분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열린 반중(反中) 시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는 보수단체 '민초결사대'가 "반국가세력 척결", "짱깨 OUT"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반중 시위를 벌였다. 일부 대만 관광객들은 "괜히 중국인으로 오해받을까 걱정된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대만 관광객들의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대만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에서 대만 국적 유튜버 A씨가 한국인 남성 2명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남성들은 A씨에게 "하룻밤을 보내자"고 제안하며 신체 접촉을 시도하다 거절당하자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경찰은 가해자를 중국인이라고 발표했다가 정정해 논란이 일었다.
또 지난 4월에는 30대 남성 B씨가 버스 안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던 중국인 여성 2명을 폭행한 뒤, 닷새 뒤에는 대만인 남성을 중국인으로 오인해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사건도 있었다.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이 평소 중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가 실제로 중국인을 노리고 범한 혐오범죄로 보인다"며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편 국내 중국인 관광객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은 52만 5396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4% 증가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외국인 관광객 3명 중 1명은 중국인으로, 8월 한 달 동안 60만 5000명이 입국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월(57만 8000명)을 넘어선 수치다.
정부는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6월 30일까지 3명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상태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