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클래식 이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우승자 아닌 예술가 키워야죠”

입력 2025-10-15 17:12
수정 2025-10-15 17:13


독일에서 바흐, 베토벤, 브람스 음악을 가르치는 건 한국에서 아리랑이나 판소리를 가르치는 일과 같다. 그만큼 독일인들이 나고 자랄 때부터 모국어처럼 익히고, 깊은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며, 나라의 유산(遺産)으로 귀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 그래서 독일의 유서 깊은 음대에서 교수가 된다는 건 단순히 좋은 직함 하나를 얻는다는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출중한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 탁월한 리더십 등을 인정받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가 겸 교육자에게만 주어지는 명패라서다.

그 자리를 꿰찬 인물이 ‘클래식 음악의 종주국’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건너온 음악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의 명문 베를린 국립음대의 초빙교수를 거쳐 뮌헨 국립음대 전임교수, 학장 자리까지 오른 최초의 아시아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66)의 얘기다. 지난 1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났다.

그가 1975년 열여섯 살의 나이로 스위스 유학길에 오른 지 딱 50년만. 이미경은 “뮌헨 국립음대에서의 정년 연장, 해외 음대 교수 제안 등을 모두 거절하고 한국행을 택한 건 내 나라에서 한 번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2004년부터 19년간 재직한 뮌헨 국립음대는 유럽 최고 음대 순위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명문이다. 지휘자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등을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2020년엔 아시아인 최초로 뮌헨 국립음대 학장으로 선임돼 5년간 자리를 지켰다. 그는 “뮌헨 국립음대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건 ‘자기만의 소리와 생각’을 키우는 것”이라며 “예술에서 개성이 없다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학생들이 뮌헨 음대 시험을 볼 때면 테크닉이 완벽하고 음정 하나 틀리지 않아도 뽑을 수 없는 경우들이 생겨요. 기본기가 흔들리는 건 고쳐줄 수 있지만, 스스로 내고 싶은 소리나 음악이 없는 건 가르칠 수 없거든요. 단순히 좋은 점수나 순위를 얻는 것만을 목표로 연습한 폐해죠.”

유럽 클래식 음악 교육의 최전선에서 30년 넘게 몸담은 이미경은 “이제 한국 클래식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 줄 세우기 교육이 콩쿠르에서 우승자를 배출하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을 예술가로 성장시키는 데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한국 음악가들은 명문대 진학률도 높고, 콩쿠르에서 성적도 뛰어나지만 정작 세계 최정상 반열에 오르는 거장의 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이미경은 “국제 콩쿠르 우승자가 많다는 건 클래식 강국을 나타내는 지표도, 훌륭한 음악가를 다수 보유한 나라라는 증표도 될 수 없다”며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1명의 영재를 키우는 것이 아닌 99명의 예술가를 배출하기 위한 방향으로 키를 돌려야 합니다. 콩쿠르 1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학생이 평생 음악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경쟁력과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 교육의 실질적인 목표니까요.”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온 건 올해지만, 그는 3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미마 아카데미(MIMA Academy·Mi-kyung Lee International Music Academy)를 설립하면서다. 지금껏 제대로 된 외부 활동 한번 해본 적 없지만, 미국 예일대, 독일 뮌헨 국립음대 등에서 모이는 화려한 교수진에 매년 접수가 조기 마감돼 10여명의 대기자가 발생하기 일쑤다. 그는 “대단한 목표가 있다기보단, 해외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많은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아이들이 음악으로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아카데미의 특별한 점은 새벽 1시까지 선생님들의 방문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궁금한 점이나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지 선생님을 찾아 질문하고 함께 문제에 대해 논의해볼 수 있다. 레슨은 전부 공개로 진행된다.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미경이 가장 강조하는 건 ‘좋은 소리’다. 그는 “음악에서의 소리는 음식에서의 ‘맛’과 같다”며 “음식의 모양이나 색깔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단 1초 충격적인 맛이 느껴지면 평생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머리가 아닌 몸의 감각으로 파고드는 음악은 굉장한 힘을 지닙니다. 그래서 전 학생들에게 늘 ‘2000명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단 한 사람만 울리면 된다’고 말해요. 그저 손가락을 빠르게 돌리거나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건 서커스에서 수많은 회전을 선보이며 잠시 놀라움을 주는 일에 그치지만, 감정의 동요를 만들어낸다는 건 일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준단 의미니까요. 그게 바로 예술가란 증표죠. 그래서 제 클래스에선 남들과 비슷한 연주는 허용할 수 없어요. 흔한 비교, 경쟁도 없죠. 예술은 그냥 잘하는 것이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든요.”

환갑이 넘은 나이. 남부러울 것 없는 경력을 쌓으며 정상급 반열에 오른 음악가지만 그는 “아직도 바이올린을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전 매일 연주자로서 더 나아지는 걸 원합니다. 제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소리가 악기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는 날을 꿈꾸죠. 음악을 향한 열망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제자들에겐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던 동료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서로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고, 무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요. 그거면 충분합니다(웃음).”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