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90% 오른 비트코인, 지금 사서 10년 묵혀도 될까

입력 2025-10-27 08:07
수정 2025-10-27 08:50


“비트코인, 슈퍼 사이클인가 불안한 고점인가.”
“지금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잠시 관망해야 할까.”
“10년 뒤에 꺼내면 대박일까.”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고민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10월 초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발언 이후 대규모 청산이 발생하며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후 일부 반등 흐름도 나타났지만 시장의 시선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금리인하 기대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한 기관 자금 유입을 근거로 ‘비트코인 연말 20만 달러’를 점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 변수와 과열된 투자 열풍이 불러올 조정 가능성을 경계한다.

◆1년 수익률 90%

연간 수익률로 보면 가상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타 자산 대비 수익률이 높다.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1년간 90% 넘게 뛰었다(코인마켓캡). 이 기간 S&P500지수는 15%, 국제 금값은 55% 급등했다.

10월 들어선 더 큰 폭으로 뛰었다. 10월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이른바 ‘업토버(Uptober)’와 글로벌 유동성 확대에 따른 ‘에브리싱 랠리’(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이 동시에 상승) 기대감이 겹치며 상승장이 펼쳐졌다. 10월 5일 12만5000달러를 돌파한 후 이틀 만에 12만6000달러를 터치하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9월 말(11만 달러 선)과 비교하면 일주일 새 약 14% 오른 셈이다. 시가총액이 2조2000억 달러를 넘어선 대형 자산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승폭이다.

하지만 상승 랠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10월 10일 가상자산 시장이 급락했다. 시총 4000억 달러가 증발했다(트레이딩뷰).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고점 대비 12.7% 떨어졌고 알트코인은 낙폭이 더 컸다. 이더리움이 20.17%, 솔라나 21.24%, 리플(XRP) 37.61%, 도지코인이 40.97% 각각 떨어졌다. 같은 날 미국 대형 기술주 엔비디아(-4.89%), 아마존(-4.99%), 메타(-3.85%), 애플(-3.45%)보다 하락폭이 훨씬 컸다. 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산 100% 추가 관세’ 발언이 촉매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한마디에 와르르, 왜?

전문가들은 이번 폭락의 원인으로 ‘레버리지(빚 투자)’ 청산을 꼽는다. 실제 이날 하루에만 191억 달러의 가상자산 파생상품이 청산됐다. 최대 규모다. 이 중 90%가 상승에 베팅한 롱(매수) 포지션이었다.

양현경 IM증권 애널리스트는 “10월 7일 가상자산 선물 미결제약정이 2335억 달러로 급증하면서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레버리지가 높아진 상태에서 미·중 무역전쟁 격화 조짐이라는 악재가 터지자 시장이 급락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청산이 한꺼번에 쏟아졌다”고 분석했다.

투자자가 50만원을 맡기고 ‘3배 상승’에 베팅했다고 가정해보자. 거래소는 이 투자자의 돈을 담보로 100만원을 추가로 빌려주고 투자자는 총 150만원을 투자하게 된다. 코인 가격이 10% 오르면 투자자는 30% 수익, 즉 15만원을 번다. 하지만 반대로 가격이 30% 떨어지면 투자자는 증거금까지 잃게 된다. 증거금보다 손실이 커질 경우 거래소는 즉시 해당 자산을 팔아버린다.

이런 방식은 전통 금융시장에도 존재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훨씬 더 위험하다.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낮고 가격 변동이 심한 데다 시장이 24시간 내내 열려 있어 주식시장처럼 추가 증거금을 요청받을 시간조차 없다. 시스템이 정해놓은 알고리즘에 따라 순식간에 매도가 실행되며 시장 전체로 충격이 번지는 구조다.

코인 데이터 분석 업체 코인글래스 등에 따르면 탈중앙화 파생상품 거래소인 하이퍼리퀴드의 이번 청산 규모는 102억 달러로 전체 청산 규모의 53.6%를 기록했다. 바이비트(46억 달러), 바이낸스(23억 달러), OKX(11억 달러) 등에서도 역대 가장 큰 청산이 발생했다.

양 애널리스트는 “하이퍼리퀴드는 높은 레버리지 거래를 지원하는 동시에 탈중앙화를 유지해야 해 자동 디레버리징(ADL)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며 “가격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를 경우 청산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청산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서 청산이 발생하게 돼 투자자의 증거금을 초과하는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 영향에 반등했다가 11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10월 15일 기준).



◆루나 사태 이후 최대 구조조정

향후 가상자산 시장 전망은 갈린다. 이번 악재로 과거 테라·루나 사태, FTX 사태 때보다 더 큰 규모의 자금 이탈이 발생하면서 비트코인 최고가 경신이 지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전문매체 코인텔레그래프는 “미·중 관계 개선 여부와 무관하게 투자자들은 여전히 비트코인 파생상품 거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최고가 경신은 수개월 지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당장 10만~11만 달러 구간에서 횡보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강세장이 이어지려면 비트코인이 11만7500달러를 돌파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루나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구조적 조정으로 평가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10x리서치는 “알트코인은 본질적 가치가 불분명하고 소수 트레이더의 유동성 공급에 의존하는 도박장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가상자산 트레이딩 업체 윈터뮤트의 예브게니 가이보이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충격으로 알트코인 시장이 구조적으로 축소될 것”이라며 “투기성 코인에 기반한 생태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봤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연말까지 관망을 권했다. 그는 “과거와 리스크의 결은 다르지만 큰 변동성이 단기간 발생했기 때문에 여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중소형 종목 위주로 큰 피해가 발생한 만큼 모니터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비트코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장기 보유 전략만으로는 위험 관리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코인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거나 이번처럼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할 경우 단기적으로 큰 변동성이 발생할 수 있다. 코인 시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이를 투자 비중에 반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비트코인은 간다

반면 미국을 필두로 각국 정부가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고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장기 전망에 대한 낙관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시장에선 내년 상반기까지 비트코인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 세계 유동성 확대와 주요국 재정 리스크로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화폐가치 희석 회피 투자)에 따른 대체자산 가격 상승 흐름이 지속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양 애널리스트는 급락 후 매수하는 ‘바이 더 딥’ 전략을 추천했다.

홍 애널리스트도 “금과 은이 오르듯 비트코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비트코인 투자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방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내 미국에서 클래리티 법안(디지털 자산 법적 정의 및 규제 기관 관할 범위 등)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관세전쟁 이슈에서도 비트코인의 낙폭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크지 않았고 (법안이 통과돼) 시장의 불활실성이 해소되면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드은 전 세계 자본시장에 돈이 풀리면 연내에 비트코인 가격이 20만 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씨티은행은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서 기관 수요가 높다”며 “비트코인이 연말 13만2000달러에 도달한 뒤 12개월 후에는 18만1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