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트렌드]
국내외 증권사들이 국내 반도체 양대 대형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주가 눈높이를 잇따라 올려 잡고 있다. 올 초부터 수개월간 잠잠했던 주가가 최근 두 달여간 빠르게 올랐는데도 여전히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게 중론이다. 반도체 업황과 각 기업 수익성을 두고 우려 섞인 갑론을박이 오갔던 올 상반기와는 완전 딴판인 분위기다.
최근 증권가는 잇따라 삼성전자에 대한 목표주가를 올리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까지 한 달간 삼성전자에 대해 목표주가를 제시한 증권사는 20곳이다. 이 중 네 곳을 제외한 16곳이 목표주가를 평균 22.8% 올려 잡았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를 두고는 투자의견을 제시한 19곳 중 16곳이 목표주가를 평균 32% 상향했다.
국내외 증권가 목표주가 상향 잇따라
외국계 투자은행(IB)들도 일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대비 상향하고 있다. 지난달(9월) 보고서를 낸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시티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메모리 빙산이 다가온다' 등 반도체 업황 비관론을 강조해 한때 ‘반도체주의 저승사자’로 불린 모건스탠리는 전망을 180도 바꿨다.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시장이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들어갔다”며 “메모리 사이클은 2027년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외 증권사가 반도체주가 유망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뚜렷하다. 글로벌 반도체 수요가 기존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세에 소규모 데이터센터 등의 활용이 늘면서 기존엔 수요 전망에 별 무게를 두지 않았던 범용 메모리 반도체 제품까지 수요가 늘고 있는 게 주요 이유다.
금융투자 업계 등은 기존엔 AI 서비스가 확산할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첨단 D램 수요가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이터 학습·추론에 쓰이는 AI 가속기에 HBM이 필수 부품으로 쓰여서다.
‘HBM뿐 아냐’ 예상보다 더 큰 수요
그런데 올 3분기부턴 예상 밖 현상이 추가로 나타났다. HBM뿐 아니라 일반 서버용 D램, 낸드플래시(낸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빅테크들이 AI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면서 늘어난 서버만큼 서버용 D램이 필요하게 됐다. AI가 고도화한 영향에 서버 한 대당 들어가는 단위 수요도 급증했다. 저장용 메모리인 낸드도 마찬가지다. AI 가속기가 정보를 처리하려면 그 정보를 어디선가 받아오고, 새로 저장해야 해 수요가 늘었다.
여기에다 앞서 클라우드·데이터센터 투자 ‘붐’이 일어난 2017~2018년에 대거 탑재된 메모리 칩들의 사용 연수가 7~8년 경과하면서 교체 수요도 더해졌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D램에 이어 낸드까지 AI 시장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며 “올 3분기부터 수요 개선이 본격화한 분위기”라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빅테크들은 반도체 칩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월엔 챗GPT 개발·운영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각각 포괄적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픈AI가 주도하는 700조 원 규모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핵심 협력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오픈AI가 두 기업으로부터 HBM 칩을 사겠다는 사실상의 ‘입도선매’ 움직임이다. SK하이닉스를 산하에 둔 SK그룹은 국내 서남권(전남)에, 삼성은 동남권(포항)에 각각 오픈AI와 함께 데이터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공급은 제한적…‘수익성 UP’
반도체 수요는 세계적으로 폭넓게 급증하는 반면,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반도체 생산 공정이 워낙 정밀하고, 필요한 첨단 장비가 많다 보니 기업들이 빠르게 생산 라인을 늘리지 못해서다.
기업들은 HBM 생산을 위해서도 서버용 D램 등 기존 범용 D램 생산 라인을 전환해 왔다. HBM의 마진이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범용 D램 수요가 늘어도 쉽게 범용 D램 생산을 확대하기가 어렵다.
지난 2년여간 반도체 업체들이 보수적인 설비투자 기조를 유지해 온 것도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이유다. 낸드는 전방 시장인 스마트폰과 PC 시장이 침체하면서 2022년부터 극심한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됐다. 자연히 기업들은 생산능력 확충에 힘쓰지 않았다.
수요가 확 늘고 공급이 달리면 가격이 오른다. 그만큼 수익성도 증가한다. 범용 D램(DDR4 8Gb) 가격은 지난 1월 1.4달러에서 지난 9월 말 6.3달러까지 올랐다. 범용 D램 가격이 6달러를 넘은 것은 지난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이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수급이 빠듯해질수록 기업들의 ‘초호황’ 사이클이 더 길고 강력하게 지속할 가능성이 뚜렷해진다”고 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27년까지 역대 최장 기간의 메모리 업사이클을 예상한다”고 했다.
“양사 합산 시총 1000조 원 시대 온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성장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주가도 중장기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이 10조5267억 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62.1%만큼 더 불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컨센서스는 지난해 4분기에 비해 48.3% 높은 11조9928억 원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까지는 반도체 사이클 피크아웃(정점) 시그널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보유자라면 연내엔 일단 팔지 말고 가져갈 만하다”고 했다. 실적 전망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공급 과잉이나 사이클 정점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굳이 팔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최근 급등한 주가 수준도 큰 부담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대형주는 과거 수준을 바탕으로 주가가 많이 올랐는지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없다”며 “AI엔 반도체가 필수 요소인 만큼 AI 이전 시대의 주가 수준에 얽매여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라고 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세는 철저하게 실적을 기반으로 오른 것”이라며 “두 메모리 업체의 합산 시가총액이 1000조 원 이상이 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지난 10월 중순 삼성전자의 시총은 약 560조 원, SK하이닉스 시총은 310조 원이었다.
그는 “연말까지 두 기업에 대한 주가 리스크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주가가 조정받을 때마다 투자 비중을 늘릴 만하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