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매수 200弗, 한국인 매매 3만弗"…뇌물주면 다 되는 캄보디아

입력 2025-10-15 17:42
수정 2025-10-23 16:09
‘태국에서 코인 투자를 함께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지난해 12월 방콕으로 떠난 정모씨(28)는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의 차량에 탑승했다가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납치됐다. 태국과 접한 국경도시 포이펫으로 옮겨진 그는 올해 1월 현지 수사당국에 감금 사실을 신고했으나 중국인 총책이 신고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보복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가까스로 구출돼 지난 2월 한국에 들어온 정씨는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신고 후 1~2시간 만에 중국인 사장이 나를 불러 ‘왜 신고했냐’며 호통을 쳤다”며 “범죄 조직과 경찰이 이렇게 끈끈하게 연결돼 있는지 모르고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 급습 정보 유출…인신매매 활개
한국인을 겨냥한 강력 범죄가 잇따르는 캄보디아에서는 현지 수사당국과 공무원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해 있다. 현지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감금된 한국인 신고자를 범죄 조직에 알려주는가 하면, 체포돼 수감된 한국인이 다른 범죄 조직에 팔려 다시 납치·감금되는 인신매매도 벌어지고 있다.

캄보디아발 피싱 사건으로 서울경찰청의 수사를 받던 20대 A씨는 8월 22일 자진 귀국해 체포됐다. 그는 캄보디아 정부가 송환을 거부한 인터폴 수배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이례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귀국에 성공한 것은 캄보디아 현지 공무원들에게 제공한 뇌물 덕분이었다. 경찰, 이민국 직원 등 공무원들에게 두 달간 5000달러에 가까운 뇌물을 주고 한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중국계 갱단은 기업형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월 10만달러 이상을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상납하면서 유착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범죄단지를 경험한 다수 한국인은 현지 구치소 공무원에게 1만~5만달러를 주면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심각한 것은 범죄 조직 간 인신매매다. 범죄 조직이 뇌물을 주고 교정시설에 갇힌 다른 범죄 조직원을 빼내 자신들의 조직으로 납치하는 식이다. 현지 범죄단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 범죄 조직 소속 한국인이 구금되면, 다른 조직이 공무원들에게 3만달러 수준의 뇌물을 주고 데려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전했다. ◇뇌물 만연…수사 공조 어려워범죄 조직과 공직 사회 간 유착 구조 탓에 한국 경찰과의 수사 공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간 한국인 대상 강력 범죄에 대해 양국 수사당국의 공조가 성과를 내지 못한 배경에는 수사 및 이민당국의 부패가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캄보디아에서는 법 집행 체계가 허술해 비리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데다 임금 수준이 낮아 현지 공무원이 뇌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자들에게 매수되는 경우가 잦다. 실제로 현지에서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공유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00~1000달러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베트남 국경 직원 밀입국 허가(1000~5000달러) △인터폴 수배자의 이민국 출국 비자 발급(1000~5000달러) △구금시설 내 에어컨 제공·휴대폰 반입(월 5000~1만달러) 등으로 뇌물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이 같은 ‘뇌물 먹이사슬’의 영향으로 캄보디아 수사당국이 한국 경찰이 제공한 정보를 묵살하는 사례도 많다. 출입국 기록, 인터폴 수배 여부, 비자 발급 등 수사 공조를 위한 모든 단계에 부패가 스며든 탓에 한국 경찰이 현지 당국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피싱 범죄를 수사하는 한 경찰관은 “공조가 비교적 잘되는 베트남, 태국과는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김다빈/류병화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