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는 예술에서 가장 많이 다뤄져온 주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관점은 예술가마다 천차만별이다. 벌거벗은 몸은 예술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의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는 창(窓)일 수도 있다. 수만년 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든 구석기시대 원시인은 몸을 다산의 상징으로만 봤지만,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를 통해 완벽한 인간의 몸을 창조한 신을 찬미한 게 단적인 예다.
서울 성북동 제이슨함 갤러리에서 열리는 ‘누드, 살, 그리고 사랑’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누드를 바라본 국내외 작가 16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다. 김정욱, 이목하, 한지형 등 국내 작가부터 수십억원대 경매 낙찰 기록을 보유한 미국 작가 조너선 가드너,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 우르스 피셔까지 감각적인 작업으로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이 나왔다. 20~30대 젊은 작가 비중이 높은 게 특징이다.
지난해 OCI미술관 개인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동양화가 김정욱은 몽환적인 두 인물의 누드를 통해 신비로운 교감을 표현한 작품 ‘무제’(2023)를 내놨다. SNS 등을 통해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그려 각광받는 이목하는 ‘첫 식사’, ‘얼굴 벗기기’ 등 올해 신작 두 점을 선보였다. 한지형은 마치 옷을 벗는 것처럼 뼈에서 살을 분리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특유의 강렬한 화풍으로 표현한 신작을 출품했다.
영국의 젊은 작가 이시 우드는 남성의 복근과 여성의 미니스커트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강조되는 인간의 신체를 주제로 그림들을 그렸다. 반면 미국 화가 존 커린은 신체 비례가 맞지 않는 이상한 누드화를 출품했다. 방식은 달라도, 두 작가 모두 인간의 몸이 상업적 도구이자 저속한 욕망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비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피셔가 출품한 브론즈 조각 작품, 마티스와 피카소 등 미술사 거장들의 영향이 녹아 있는 가드너의 누드 회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